학원에서 공부 중인 공무원 준비생들. 지난 7일 치른 국가공무원 9급 공채(4953명) 필기시험에 15만5388명이 응시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하고 싶은 거 다 하겠다는 건 욕심이잖아요. 포기할 건 포기하게 됐어요. 꿈도 여건이 돼야 꾸는 거죠"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A 씨는 얼마 전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십 번의 낙방으로 인해 미래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안정적이고 제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최근 극심한 취업난이 이어지자 청년들이 직업보다는 '현재'와 '삶'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신조어 '워라밸'과 '욜로'는 이러한 청년세대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청년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요시한다. 워라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해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우리나라 취업 준비생 10명 중 4명(39.4%)이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이유다. 인사혁신처 조사 결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공시생 76%가 '안정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구직난'이 그 뒤를 이었다. 젊은이들에게는 큰 꿈보다는 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종종 기성세대에게 한탕주의로 비판받기도 하는 '욜로(YOLO)' 역시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말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욜로족은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것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워라밸'과 '욜로' 모두 과도한 경쟁과 불안감에 지친 2030 세대가 체득한 나름의 삶의 방식인 셈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청년들의 상황은 종종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교되곤 한다.
사토리 세대'는 1980~2000년 일본의 장기 불황이 이어졌던 '잃어버린 20년'에 태어난 세대를 뜻하는 말로, '사토리'는 '득도(得道)'라는 뜻이다. 사토리 세대는 성장기에 학습된 불황과 좌절을 통해 자기만족의 범위에서 꿈을 갖는다. 이들은 출세와 돈벌이에 큰 관심이 없고 그저 소소한 삶에 만족한다.
사토리 세대의 이 같은 성향은 일본 경기가 회복된 지금에까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 경기 회복으로 구직자 1명당 1.37개의 기업이 경쟁하는 역설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구직보다는 아르바이트를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를 줄이고 생활 반경을 극히 일부로 제한한다. 거주지 반경 1마일 내에서 직장을 비롯해 모든 생활을 해결하는 '1마일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덕분에 편의점 매출만 올라가고 있다. 연애에도 관심이 없다. 일본 유명 중매 사이트 라쿠텐 오넷이 20대 남녀를 대상으로 '이성 교제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2000년에는 90%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점차 줄어 2015년에는 62.6%만이 이성교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20대 중 80%가 자신의 삶에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사토리 세대들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행복해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암담한 현실에 대한 자기방어적 태도라고 분석한다.
사토리 세대의 이 같은 모습이 우리 청년세대의 미래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전문가들은 사토리 세대의 성향이 한국에 그대로 재현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의 경우 임계기인 청소년기 전반에 걸쳐 장기 불황을 경험했지만 우리 청년들의 경우는 그에 비해 오랜 기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N포 세대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일 뿐 여건만 되면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청년들이 말하는 '헬조선', '욜로'와 같은 자조적인 표현들은 '아프다는 신호'다. 오히려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희망적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청년들의 이 같은 메아리가 지속되게 된다면 포기세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디딤돌이 되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양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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