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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1시간 은행문 닫자는 금융노조
입력 2018-04-12 17:47 
웃고는 있지만…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장(왼쪽)과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 12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2018년 1차 산별교섭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은행권 노사가 '점심시간 창구업무 중단' '주4일 근무제'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둘러싼 중앙 산별교섭을 시작했다. 은행 직원뿐 아니라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관심이 쏠린다.
12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첫 단체교섭을 벌였다. 이날 교섭에는 대표단인 KB국민·신한·NH농협·부산은행과 한국감정원 등 5개사 노사가 참석했다. 올해 첫 상견례를 겸한 자리인 만큼 은행장들과 각 기관 노조 지부장들도 직접 자리에 나왔다. 교섭에 참석한 한 은행장은 "오늘은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고 앞으로 횟수에 제한 없이 대표단급·실무급 교섭을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노조는 앞서 지난달 말 △정년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노동이사 선임 등 경영 참여 △양성평등과 모성보호 항목 등으로 구성된 '2018년 산별 임금 및 단체협약 등에 관한 합의서'를 사측에 제시했다. 주요 쟁점으로는 '점심시간 일괄 적용'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노조는 '영업점 휴게시간을 낮 12시 30분~오후 1시 30분에 동시에 사용한다'는 조항을 요구안에 포함했다. 일선 병원이 점심시간에는 진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은행도 점심시간을 통일해 직원 점심시간 1시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점심시간에 고객이 몰리는 은행 영업점 특성상 직원들이 제때 쉬지 못하는 문제는 고질병처럼 여겨져 왔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은행원들의 휴게시간 1시간 사용 비율은 2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요구가 관철되면 점심시간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장인 고객의 은행 방문이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한 은행 관계자는 "고객 불편 탓에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은행의 부행장은 "유연근무제 등으로 저녁까지 운영하는 점포도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하면 (노조 요구는)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 8시간에 휴게시간(점심시간) 1시간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고,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실제로 점심시간에 은행 문을 닫는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주4일 근무제 도입'이다. 노조 요구안에는 기준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에 '1주 40시간, 5일 근무'로 규정돼 있던 것을 '1주 40시간 이하, 5일 이하 근무'로 수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이 규정이 받아들여지면 향후 주4일제(주 32시간제)를 도입하는 데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노조 측은 과로에 시달리는 은행원들의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고 그 자리에 은행원을 추가 고용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섭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 은행원은 "주5일제와는 달리 임금 삭감 논의가 불가피할 텐데 반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상시화하는 분위기라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또 현행 60세인 정년을 최대 65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시기를 60세 이후로 제한하는 개정안도 요구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논의를 시작해야 할 단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하는 '노동이사제'와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권 보장, 낙하산 인사 금지 등 관치금융 철폐를 위한 조항을 단체협약에 신설하는 내용도 주요 요구사항이다.
[정주원 기자 / 임형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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