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증권 사태 일파만파 ◆
전산 착오를 일으킨 직원과 이를 승인해준 책임자, 단 두 사람이 한순간에 112조원어치의 '유령주식'을 만들어냈다. 삼성증권의 배당 착오 사건은 부실한 내부 통제와 '크로스 체크'가 없는 증권거래 시스템이 불러온 '예견된 재앙'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증권 사건은 지난 5일 담당 직원이 현금 배당을 주식 배당으로 잘못 입력하고, 최종 결재자인 팀장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인하면서 비롯됐다. 이로 인해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에 대해 지급했어야 할 배당금 28억1000만원은 삼성증권 주식 28억1000만주로 둔갑했다. 회사 측은 지난 6일 오전 9시 31분에서야 착오를 인지했지만 잘못된 주문을 차단한 오전 10시 8분까지 37분간 위기대응에 실패했다.
매도에 나선 삼성증권 직원 16명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6일 오전 9시 39분 증권관리팀장이 본사에 배당 입력 사고를 유선으로 알렸고, 오전 9시 51분부터 총 세 차례 사내 통신망을 통해 '직원계좌 매도금지'라는 팝업 창을 띄워 공지했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오전 10시 5분까지 약 26분간 주식을 계속 매도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이번 사건으로 삼성증권과 거래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증권과 거래 중단에 나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에서 국민연금과의 거래 여부는 기관 영업 부문 연간 실적의 20~30%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금감원이 이 사태를 '대형 금융사고'로 규정하고 나선 데다 국민연금까지 삼성증권에 대한 실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돼 삼성증권의 기관 영업 부문에서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특히 국민연금이 계약 기간 중에 증권사와 거래를 중단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 지난해 연말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 경고' 조치를 받은 KB증권이나 '기관주의' 결정을 받은 NH투자증권도 국민연금과의 거래 중단 우려가 커지기는 했지만 거래는 지속되는 상태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이번 유령 주식 배당 사태를 계기로 삼성증권의 내부 통제 이슈가 불거진 데다 주식 거래 안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거래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증권이 심각한 내부 통제상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지만 발행주식 수의 30배가 넘는 주식이 버젓이 배당 명목으로 지급되고 심지어 일부가 유통되면서 증권 발행·거래 시스템의 '허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직원들에게 배당할 수 있었던 것은 증권사의 현금 배당 업무에 '제3자'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것이 1차적 원인이었다.
상장 증권사들은 우리사주 조합원에 대한 현금 배당을 그동안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하지 않고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일반 주주에 대해 현금 배당을 할 때는 예탁원과 거래 증권사를 거치게 된다"며 "이에 비해 상장 증권사는 우리사주에 대해서는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실제 발행되지 않은 주식이 착오로 입고될 수 있는 시스템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게다가 삼성증권은 발행 회사로서 주주에 대한 배당과 투자중개업자로서 고객에 대한 배당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해왔다는 점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배당을 앞둔 다른 증권사 4곳을 점검한 결과 시스템은 삼성증권과 같은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차제에 증권사들의 우리사주 배당 업무도 일반 주주와 동일하게 제3의 기관을 반드시 경유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식거래 시스템상의 '구멍'도 드러났다. 발행주식의 30배를 넘는 물량이 계좌에 입고되고 매도 주문을 거쳐 계약이 체결될 때까지 '경고음'은 어디에서도 울리지 않았다. 단지 주가가 이상 급락하는 것이 감지돼 거래소가 변동성 완화장치(VI)를 일곱 번 발동했을 뿐이다. 삼성증권이 문제를 더 늦게 인지했더라면 더 많은 유령주식이 유통됐어도 속수무책일 뻔했다.
유관기관은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발행 실무는 우리가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발행된 주식이 입고된다는 전제하에 증권거래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행주식을 초과하는 주식이 유통된 것을 놓고도 '핑퐁 게임'이 벌어졌다. 예탁원 측은 "증권사 고객계좌의 총량과 예탁원이 보유한 주식 총량을 장중에 실시간으로 비교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사주 주식 업무는 증권금융이 담당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사주 예탁 업무를 하는 한국증권금융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사주를 보관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현금배당을 주식으로 잘못 배당한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이 주식 배당을 한다고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예탁원이나 증권금융 모두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는 항변이다.
감독당국의 뒤늦은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6일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금감원은 "삼성증권의 내부 조사 결과를 들어본 뒤 현장 점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말을 거치며 청와대에 청원이 빗발치는 등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뒤늦게 "대형 금융사고"라며 현장 특별 점검과 검사 계획을 내놨다.
[신헌철 기자 / 진영태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산 착오를 일으킨 직원과 이를 승인해준 책임자, 단 두 사람이 한순간에 112조원어치의 '유령주식'을 만들어냈다. 삼성증권의 배당 착오 사건은 부실한 내부 통제와 '크로스 체크'가 없는 증권거래 시스템이 불러온 '예견된 재앙'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증권 사건은 지난 5일 담당 직원이 현금 배당을 주식 배당으로 잘못 입력하고, 최종 결재자인 팀장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인하면서 비롯됐다. 이로 인해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에 대해 지급했어야 할 배당금 28억1000만원은 삼성증권 주식 28억1000만주로 둔갑했다. 회사 측은 지난 6일 오전 9시 31분에서야 착오를 인지했지만 잘못된 주문을 차단한 오전 10시 8분까지 37분간 위기대응에 실패했다.
매도에 나선 삼성증권 직원 16명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6일 오전 9시 39분 증권관리팀장이 본사에 배당 입력 사고를 유선으로 알렸고, 오전 9시 51분부터 총 세 차례 사내 통신망을 통해 '직원계좌 매도금지'라는 팝업 창을 띄워 공지했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오전 10시 5분까지 약 26분간 주식을 계속 매도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이번 사건으로 삼성증권과 거래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증권과 거래 중단에 나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에서 국민연금과의 거래 여부는 기관 영업 부문 연간 실적의 20~30%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금감원이 이 사태를 '대형 금융사고'로 규정하고 나선 데다 국민연금까지 삼성증권에 대한 실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돼 삼성증권의 기관 영업 부문에서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삼성증권이 심각한 내부 통제상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지만 발행주식 수의 30배가 넘는 주식이 버젓이 배당 명목으로 지급되고 심지어 일부가 유통되면서 증권 발행·거래 시스템의 '허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직원들에게 배당할 수 있었던 것은 증권사의 현금 배당 업무에 '제3자'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것이 1차적 원인이었다.
상장 증권사들은 우리사주 조합원에 대한 현금 배당을 그동안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하지 않고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일반 주주에 대해 현금 배당을 할 때는 예탁원과 거래 증권사를 거치게 된다"며 "이에 비해 상장 증권사는 우리사주에 대해서는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실제 발행되지 않은 주식이 착오로 입고될 수 있는 시스템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게다가 삼성증권은 발행 회사로서 주주에 대한 배당과 투자중개업자로서 고객에 대한 배당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해왔다는 점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배당을 앞둔 다른 증권사 4곳을 점검한 결과 시스템은 삼성증권과 같은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차제에 증권사들의 우리사주 배당 업무도 일반 주주와 동일하게 제3의 기관을 반드시 경유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식거래 시스템상의 '구멍'도 드러났다. 발행주식의 30배를 넘는 물량이 계좌에 입고되고 매도 주문을 거쳐 계약이 체결될 때까지 '경고음'은 어디에서도 울리지 않았다. 단지 주가가 이상 급락하는 것이 감지돼 거래소가 변동성 완화장치(VI)를 일곱 번 발동했을 뿐이다. 삼성증권이 문제를 더 늦게 인지했더라면 더 많은 유령주식이 유통됐어도 속수무책일 뻔했다.
유관기관은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발행 실무는 우리가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발행된 주식이 입고된다는 전제하에 증권거래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행주식을 초과하는 주식이 유통된 것을 놓고도 '핑퐁 게임'이 벌어졌다. 예탁원 측은 "증권사 고객계좌의 총량과 예탁원이 보유한 주식 총량을 장중에 실시간으로 비교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사주 주식 업무는 증권금융이 담당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사주 예탁 업무를 하는 한국증권금융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사주를 보관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현금배당을 주식으로 잘못 배당한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이 주식 배당을 한다고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예탁원이나 증권금융 모두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는 항변이다.
감독당국의 뒤늦은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6일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금감원은 "삼성증권의 내부 조사 결과를 들어본 뒤 현장 점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말을 거치며 청와대에 청원이 빗발치는 등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뒤늦게 "대형 금융사고"라며 현장 특별 점검과 검사 계획을 내놨다.
[신헌철 기자 / 진영태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