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인데 뭐 할만한 거 없을까."
주간 회의 시간에 부장이 던진 한 마디가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인턴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 하나. "서울 도심서 나무 심기"에 도전해보자는 것이다. 도심 속 나무 심을 공간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나무 심기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나무 심는 날'에 나무를 어떻게, 어디서 심을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것.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
대망의 식목일, 오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무 심기 겸 나들이를 기대한 인턴들은 실망했지만 '비도 오는데 얼른 나무 심고 퇴근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서울 종로 꽃 시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종로 꽃 시장은 비가 와서 그런지 한산했다. 묘목의 가격은 1000원에서 1만원 대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한 묘목가게 사장에게 식목일을 맞아 묘목이 잘 팔리고 있냐고 물어봤다.
"예전에 비해 30~40% 매출이 떨어졌어" 식목일이 공휴일이 아니라 더 이상 '식목일 특수'는 없다고 했다. 한창 전원주택이 유행했을 때도 묘목이 잘 팔렸다고 덧붙였다. 인턴들은 묘목을 어디서 심을 수 있을지 사장에게 문의했다. 학교로 가보라는 말을 듣고 1500원 짜리 묘목 2개를 사서 근처 학교로 향했다.
나무를 심을 장소가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모 초등학교 교무실로 향하는 중 [사진 = 양현주·김민지 인턴기자]
도착한 학교 교무실. 수상한 검정 봉투를 들고 나무를 심으러 왔다고 하자 교장실로 불려갔다. 나름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교무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턴들은 왠지 혼날 것만 같은 느낌에 괜히 긴장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교장·교감 선생님은 인자한 얼굴로 맞아주셨다. 하지만 나무를 심을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관련해 외부인을 무조건적으로 학교로 들일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곤 교장선생님답게 끝없는 훈화를 이어나갔다. 인턴들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즈음 교장선생님은 '교육지원청'로 가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황급히 자리를 뜬 후 도착한 다음 장소는 모 교육지원청. 마침 식목일을 맡아 화단에 나무를 심는 중이었다. 기대를 걸어봤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일반 시민이 와서 나무를 심을 장소는 관공서 그 어디에도 없다는 의견이었다.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비가 거세지고 있었다. "'공원'에는 묘목을 심을 장소가 있지 않을까?" 재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이제 곧 집에 갈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종로구 낙산공원 비탈길 [사진 = 양현주·김민지 인턴기자]
하지만 이곳도 실패였다.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공원을 정리해놓고 있기 때문에 멋대로 땅을 파서 나무를 심을 수는 없었다."식목일이니까 관련 행사가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설관리공단에 전화해봤다. 불행히도 식목일 당일에는 식수행사가 없었다. 실제 민간뿐 아니라 국가에서 챙기던 식수행사도 줄고 있었다. 지난해 경기도 내 시·군, 공공기관 등 40여 개 단체가 식목일을 기념, 식수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도 내에서 진행되는 식목일 행사가 10여 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마저도 일반 시민이 참석하는 것보다는 대부분 임업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행사를 진행하는 추세다.
멋대로 아무 산에다가 나무를 심어서도 안 된다. 개인 사유지를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산림청에 신청해 국가가 소유한 국유림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인턴들은 식목일에 나무를 심을 수 없는 현실에 개탄하며 '식목일을 공휴일로 재지정 해야한다'는 국민청원을 넣으려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식목일 공휴일 재지정에 대한 제안'이란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었다. 조심히 추천 버튼을 눌렀다.
대략 오후 1시부터 5시 30분까지 '식목일에 서울 도심서 나무심기'에 도전한 결과, "식목일에 서울 도심에서 나무를 심는 것은 어렵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나 직장인의 경우 업무 시간 외에 나무를 심어야하기 때문에 공휴일이 아닌 이상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봐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산세베리아 화분 하나를 사는 것으로 대리만족하기로 했다.
[디지털뉴스국 양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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