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독특한 상장 실험나선 `유니콘` 스포티파이
입력 2018-04-04 08:50  | 수정 2018-04-04 22:04

전 세계 투자은행(IB) 업계가 스포티파이가 월스트리트에 남길 선례에 주목하고 있다. 2006년 스웨덴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전 세계 2억명이 이용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다.
3일(현지 시간) 스포티파이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해 시초가 132달러에서 17.01달러(12.89%) 오른 149.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277억5900만달러(한화 29조2200억원)에 달했다. 국내에서 '멜론'을 서비스하는 로엔 시가총액이 이날 2조7821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10배 이상 규모다.
시초가는 상장 전 장외에서 거래되던 가격을 기준으로 정했다. 올해 1분기 스포티파이는 주당 48.93달러와 132.5달러 사이에서 거래됐다. 3일 시초가는 그 중 가장 높은 수준인 132달러로 정해졌다.
이는 일반적인 상장과 달리 공모가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는 월스트리트에서 전에 볼 수 없던 실험에 나섰다. 신주 발행하지 않고 기존 주식을 공모 시장에 내놓는 과정도 없었다. 기존 주주가 가진 주식을 그대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을 직상장(direct listing)이라고 부른다.

이 회사는 적자 기업이다. 7000만명 정도 되는 회원이 월 9.99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저작권료 지출과 서비스 운영, 마케팅 비용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이 회사는 자금이 필요해서 상장에 나선 것이 아니다. 스포티파이만의 기술력과 높은 시장 점유율에 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모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니콘 기업이 됐다. 창업 10년 내에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을 유니콘이라 부른다. 스웨덴 통신사 텔리아소네라를 시작으로 골드만삭스, 베일리 기포드, 센베스트 캐피털 같은 벤처캐피탈(VC)이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이 상황에서 새로 주식을 발행하면 기존 주주 지분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다만 창업 이후 12년이 흘렀다. 주식을 받은 직원들과 초기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그동안 기다려온 시간을 보상받기를 원했다. 신주 발행이 없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에게는 일정 기간 매도를 금지하는 보호예수기간도 없다.
이 과정에서 자문을 맡은 모건스탠리와 지정 시장 조성자를 맡은 시타델뱅크에 지불한 수수료는 4300만 달러(453억원)선이다. 지정 시장 조성자(DMM·designated market-maker)는 NYSE에만 있는 제도로 직접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스포티파이가 일반적인 신주발행과 기업공개 과정을 거쳤다면 투자은행에 지불할 수수료는 10배 이상으로 뛰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저렴한 이유는 기관 투자가가 참여하는 투자 설명회를 공모가 산정 절차를 생략한 덕분이다.
이와 관련해 다니엘 에크 스포티파이 창업자 겸 CEO는 "기업들은 왜 자신들 주식을 사야하는지 알리는 인터뷰를 하는 데 하루를 꼬박 쓴다"며 "우리는 반짝 관심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과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이 챙기는 수수료는 공모로 조달하는 자금의 5% 이상이다. 앞으로도 스포티파이가 양호한 주가 흐름을 보인다면 월스트리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비싼 값을 해왔는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직상장을 택하는 기업이 늘 수 있다. 다만 스포티파이와 같은 매머드급 벤처기업이기에 이 같은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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