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중국도 `벌벌` 떠는 美환율보고서
입력 2018-04-01 18:06  | 수정 2018-04-01 21:27
◆ '환율 주권' 논란 ◆
한국처럼 수출이 많은 국가의 외환당국은 해마다 4월과 10월이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미국 재무부가 발간해 의회에 제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으로 지목될까 두려워서다.
미국 재무부는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에 따른 주요 교역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왔다. 종합무역법상 환율조작국 조항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나 경상수지 흑자국 가운데 환율조작 혐의가 있는 나라'라고 모호하게 규정됐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2015년 교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이 제정됐다.
교역촉진법은 환율조작국과 같은 의미인 심층분석대상국(Enhanced Analysis) 요건을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상당한 경상 흑자 △지속적 일방향 시장 개입 세 가지로 보다 명확하게 규정했다. 이 세 가지 요건의 구체적인 기준점은 미국 재무부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2016년 이후 △대미 무역 흑자 200억달러 초과 △경상 흑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연간 달러 순매수 GDP 대비 2% 초과 또는 12개월 중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로 정해져 있다.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면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되고, 이후 유예기간 1년 동안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제재 조치가 시행된다.
심층분석대상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지원이 중단되고, 심층분석대상국 기업은 미국 조달시장 입찰이 금지된다. 또 미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해당 국가에 대한 감시 강화를 요청할 수 있다. 세 가지 가운데 2개 요건에 해당하면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이 돼 집중 감시를 받는다. 아직까지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교역촉진법이 적용된 2016년 4월 이후 네 차례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 흑자 1~3위인 중국, 독일, 일본과 함께 항상 관찰대상국에 올랐다. 미국이 환율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역전쟁에서 그런 것처럼 한국이 미·중 싸움에 엮여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환율 논쟁을 계속할 경우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한 일본처럼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플라자합의 때도 미국이 과도한 무역적자를 문제 삼아 환율을 건드린 만큼 한국은 적정선에서 타협해 미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일본은행(BOJ)이 미국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를 절상하기로 합의하며 엔화 가치는 3년 새 2배가량 뛰었고, 이는 일본의 수출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잃어버린 20년의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 재무부가 '엿장수 마음대로' 세부 규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 중국은 2017년 4월 환율보고서 발간 당시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기준 1개에만 해당됐지만 당시 환율보고서에서 '이번 보고서부터는 대미 흑자 규모와 비중이 과다한 국가의 경우 1개 요건만 충족해도 포함된다'고 요건이 바뀌는 바람에 계속 관찰대상국에 머물게 됐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대미 무역 흑자는 180억달러였으나 미국 상무부 집계로는 229억달러에 달해 이번에도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상당한 경상 흑자(785억달러·GDP 5% 추정) 규정에 걸려 관찰대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조시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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