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車키의 진화 `열쇠→무선키→스마트키→디지털키`
입력 2018-03-29 09:26 
[사진출처 = 현대모비스, 매경DB]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더라도 자동차 키는 '열쇠'로 불렸다. 아파트 열쇠와 함께 부의 상징이었다. 만들기는 쉬웠다. 자동차 키를 분실하면 동네마다 한 곳씩은 있는 열쇠 가게를 찾아 '깎으면' 됐다.
자동차 키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130여년 전 자동차가 처음 등장할 당시에는 키 개념이 없었다. 1886년 세계 최초 자동차로 특허를 받은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차체 뒤에 있는 플라이휠을 힘껏 돌려 시동을 걸었다.
오래전 농촌에서 경운기 시동을 걸기 위해 기역 자 형태의 공구를 힘껏 돌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자물쇠를 열쇠로 여는 것처럼 키를 돌려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턴키 스타터' 방식의 자동차 키는 1949년에 크라이슬러가 선보였다.

턴키 스타터 방식 자동차 키는 제작단가가 저렴하고 만들기도 쉽다는 장점 때문에 50년 가까이 사용됐다. 그러나 복제하기 쉬워 도난에 쉽게 노출됐다. 자동차를 훔치기 위해 열쇠를 비누나 양초에 누른 뒤 그 형상에 맞춰 복제 열쇠를 만드는 영화 장면도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도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업계가 싫어했다. 자동차 도난으로 손실이 커진 보험업계의 요청으로 자동차 부품업계는 도난방지기술 '이모빌라이저'를 적용한 버튼식 무선키를 1994년 선보였다. 이모빌라이저를 탑재한 자동차의 경우 고유 암호가 맞아야 문을 열고 시동을 걸 수 있었다.
무선키는 무선으로 차문을 열었지만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키를 꽂아 돌려야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직 열쇠 외형을 유지한 셈이다.
열쇠 모습은 1998년 무선 주파수를 통해 키 없이 문 열고 시동을 거는 PASE((Passive Start and Entry) 스마트키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키는 시각·촉각 측면에서 진화했다. 처음엔 외관을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 모양과 질감이 투박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무광 알루미늄, 유리, 가죽, 세라믹 등을 사용해 더 작고 세련된 멋을 추구했다.
반도체 제조에 적용됐던 수지충전공정(RTM·Resin Transfer Molding)은 키 다이어트에 기여했다.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 키는 '열가소성 수지'로 사출 성형됐다. 키 내부에 들어가는 전자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두께가 6mm는 넘어야 했다.
하지만 특수 에폭시 화합물을 사용하는 RTM 공법을 이용하면 기존보다 2mm 이상 두께를 줄일 수 있었고 모양도 정밀하고 섬세하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현대모비스]
스마트키는 근거리무선통신(NFC·Near Field Communication)과 만나면서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됐다.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차량 스마트키로 활용하는 게 NFC 스마트키다. 디지털키다.
NFC는 비접촉식 근거리 무선통신기술로 10cm 이내 거리에서 단말기 간 양방향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하다. IT 분야에서는 교통카드, 신용카드, 멤버십 카드 등을 통한 전자 결제나 금융 거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는 기술 적용 사례가 드문 편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 중에서는 현대모비스가 유일하게 이 기술을 완성했다. 세계적으로도 관련 기술을 확보한 업체는 극소수다. 현대모비스는 내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NFC 스마트키만 있으면 자동차 키를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차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고 해당 앱을 실행한 뒤 차량 도어 손잡이에 갖다 대면 스마트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삐빅' 소리와 함께 문 잠금이 해제된다.
운전석에 탑승하면 별도로 설치된 무선충전기 패드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시동(START) 버튼을 누르면 된다. 차 손잡이와 무선충전 패드 안에는 NFC 신호를 수신하는 안테나가 들어 있어 차량과 스마트폰 간 통신이 가능하다.
NFC 스마트키는 차량 공유도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차량 소유주가 배우자 등 제3자에게 키 사용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차를 공용으로 사용하거나 불가피하게 자신의 차량을 다른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 이 기능을 쓸 수 있다.
권한이 필요한 사람은 차량 소유주의 허락을 받아 스마트폰에 관련 앱을 설치하고 인증 과정을 거치면 된다. 키를 따로 챙긴 뒤 공유할 사람과 만날 필요가 없다.
제3자에게 스마트키 사용 권한을 넘겨주더라도 차량 소유주가 사용 권한을 통제할 수 있다. 특정 요일과 시간대에만 차를 사용하도록 설정하거나, 문은 열지만 시동은 걸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단, NFC 스마트키가 만능은 아니다. '해킹'이라는 디지털 복제 열쇠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해킹을 차단하기 위해 최신 데이터 암호화 기법과 인증 기술을 적용한 '인증 제어기'를 개발했다.
제어기가 하는 역할은 차량과 스마트폰 정보를 고도로 암호화한 뒤 차량·폰 소유주의 일치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해킹, 분실, 통신 정보의 위변조를 막기 위한 대비책이다.
자동차 키는 단순히 차 문을 여닫고 시동을 거는 도구에서 벗어나 자동차 기술 발전에 힘입어 '폼' 나게 진화했다. 현재는 '물질적 존재'에서 형태가 없는 '영적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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