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노후준비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퇴직연금 제도가 중도인출 급증과 수익률 악화 등으로 제 구실을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적립금을 중도인출한 가입자는 2015년 2만8080명에서 2016년 말 기준 4만91명으로 42.8% 급증했다. 인출 금액은 1조2000억원으로 27.7% 늘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전체 중도인출자의 79.7%, 중도인출 금액의 84.7%를 차지했으며 1인당 인출 금액도 남성이 3267만원인데 반해 여성은 2310만원에 불과했다.
중도인출 사유는 인출자 기준으로 주택구입(45.7%)이 가장 많았고 장기요양(25.7%), 주거목적 전세금 또는 임차보증금 충당(18.1%), 회생절차 개시(10.1%) 등의 순이었다. 2016년 인출금액은 1조2000억원으로 전년(9648억원) 대비 27.7% 늘었다.
현행 법에서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는 사유로 주택구입과 전세금 부담, 요양비,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 등을 규정한다. 또 인출 한도를 적립금 50% 이내로 정한 퇴직연금 담보대출과 달리 중도인출은 적립금 전액을 인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중도인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연금 재원 소진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해외에선 무분별한 중도인출을 막기 위해 미국은 사망, 영구장애, 55세 이후 퇴사 등 근로활동이 중단될 경우나 의료비 지출과 같은 긴급자금 수요가 발생할 경우, 영국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거나 기대수명이 1년 이하인 경우에만 중도인출을 허용하고 있다. 더욱이 해당 사유별로 인출 한도 역시 달라 미국의 경우 최초 주택구입비로 1만 달러만 인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망, 영구장애 등 재무적 어려움이 발생한 경우에만 중도인출을 허용하도록 단계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면서 "특히 주택구입비와 임차보증금, 요양비용 등 중도인출 금액 한도도 세부적으로 재설정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 수익률 저조 또한 가입자들이 중도인출을 선택하는 직·간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총비용 차감 후)은 2017년 1.88%, 최근 5년 환산 수익률은 2.39%, 9년 환산은 3.29%였다. 연간 수익률은 2016년보다 0.30%p 올랐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섰는데도 원리금 보장 상품의 수익률은 2016년보다 0.23%p 하락한 1.49%를 기록,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1.65%)보다도 0.16%p 낮았다.
실적배당 상품 역시 코스피 지수가 지난해 21.76% 올랐으나 해당 상품들의 평균 수익률은 6.58%로 2016년보다 6.71%p 상승하는 데 그쳤다. 주식시장 호황의 영향으로 실적배당 비중이 많은 DC형과 기업형 IRP의 수익률이 2.54%로 그나마 높은 편이었다. 개인형 IRP 수익률은 2.21%, DB형은 1.59%에 그쳤다. 수익률은 금융투자회사가 2.54%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생명보험사(1.99%), 손해보험사(1.79%), 은행(1.6%), 근로복지공단(1.58%) 순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보험사 등의 금융기관들이 퇴직연금 대부분을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해 수익률이 낮은 것 같다"면서 "사업자의 적극적인 운용관리와 함께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가입자의 관심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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