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인덱스투자 확산…주주목소리 더 커진다"
입력 2018-03-18 18:35  | 수정 2018-03-18 21:24
美 3대 운용사 SSGA 타라포레발라 CEO
"패시브 투자가 늘면서 투자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오해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요구는 한층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3위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스(SSGA)의 사이러스 타라포레발라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지난 15일 방한해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SSGA는 전 세계에서 2조8000억달러(약 30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미국계 자산운용사다. 국내에 사무소 형태로 진출해 있던 SSGA는 최근 한국 사업을 키우기 위해 법인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SSGA는 자산운용업계에서는 드물게 액티브펀드와 패시브펀드를 동시에 잘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액티브펀드는 펀드매니저가 직접 투자할 만한 기업을 골라 투자하면서 초과 수익을 노린다. 반면 패시브펀드는 지수를 따라가면서 지수만큼의 수익률만 추구하는 인덱스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핵심이다. 지난 10여 년간 비용이 저렴한 패시브펀드로 자금이 몰려들면서 미국 증시에서 패시브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전체 자산의 30%를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패시브 자금이 차지하는 규모는 현재 전체의 20%가 채 안 되지만 지금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면 2030년에는 액티브펀드가 사라지고 전체 자산의 100%가 패시브펀드로 채워질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하지만 패시브펀드의 성장세가 거세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지수만 따라가는 자금이다 보니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에는 관심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시장의 변동성을 과하게 키우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타라포레발라 CEO는 "실제로 글로벌 시장의 주요 투자자들은 대체로 패시브와 액티브 투자를 동시에 하고 있다"며 "패시브 자금이 급성장하면서 패시브펀드에 밀려 액티브펀드 매니저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건 오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주식시장만 봐도 액티브펀드에서 패시브펀드로 이동하는 자금보다 액티브펀드 사이에서 손바뀜이 일어나는 자금 규모가 2.5배나 많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투자자들은 기업이 싫으면 그 주식을 팔고 나가면 된다는 건 옛말"이라며 "요즘 패시브 투자자들은 기업이 싫으면 그 주식을 계속 보유하면서 회사를 고친다"고 밝혔다. S&P500지수에 투자하고 있는데 지배구조가 엉망인 기업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기업만 뺀 나머지 499개 기업에만 투자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논리다.
타라포레발라 CEO는 "패시브 자금 규모가 늘어나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며 "SSGA만 해도 포트폴리오에 속한 1만개 기업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거버넌스팀 규모도 매년 키우고 있어 앞으로 더 강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SSGA는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소녀상을 설치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려움 없는 소녀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동상은 미국 증시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서 화난 소녀가 황소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다. SSGA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3000개 기업 중 25%가 여성 등기임원이 없을 정도로 여성 차별이 심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설치했다. 처음에는 설치미술 정도로 여겨지던 이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글로벌 투자자들의 생각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자산 13조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와 자산운용사들이 SSGA의 양성평등 이사회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고, 이사회에 여성 임원이 하나도 없는 770개 기업 중 511개 회사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자 이 중 152개 회사에서 이사회에 즉각 여성 임원을 기용하기 시작했고, 34개 회사는 향후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타라포레발라 CEO는 "이런 일이 불과 1년 새 벌어진 일"이라며 "사회책임투자(ESG)를 실천하겠다고 밝힌 자금이 70조달러를 넘어선 만큼 장기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관투자가와 자산운용사가 자금력을 동원한다면 충분히 시장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SSGA는 미국 기관투자가와 자산운용사가 투자자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만든 자발적 모임인 '투자자 스튜어드십 그룹'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지난달 글로벌 증시에 변동성이 커진 게 ETF 등 패시브 자금 때문이라는 분석에도 그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타라포레발라 CEO는 "지난 1년간 변동성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갑작스레 변동성이 커진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정상적인 시장"이라며 "앞으로 3~5년간 미국 증시는 지속적으로 좋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평균적으로 볼 때 미국 S&P500지수가 1% 이상 변동하는 날이 전체 거래일의 23% 정도였는데 지난해는 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변동성이 낮았던 탓에 최근 변동성 장세를 투자자들이 오히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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