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자만의 로또, 초등생 당첨자…실수요자 위한다던 청약규제의 `배신`
입력 2018-02-13 17:23  | 수정 2018-02-13 19:41
최근 당첨자가 발표된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써밋은 분양가가 인근에 비해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통했다. 지난달 진행된 청약에선 평균 경쟁률 14.88대 1을 기록했다. [사진 제공 = 대우건설]
지난해 말 세종시에서 청약 돌풍을 일으켰던 한 아파트 미계약분 당첨자에 10대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분양한 주상복합 '세종리더스포레' 미계약분 74가구 당첨자 중 3명이 만 19세 이하 미성년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1188가구가 분양된 세종리더스포레는 평균 경쟁률 84대1로 1순위에서 청약이 마무리됐다. 당첨자 정당계약과 예비당첨자 계약까지 하고도 남은 미계약분이 74가구였던 것이다.
세종리더스포레 분양업체 측에 따르면 미계약분 당첨자 중 미성년자의 나이는 각각 19세, 17세, 11세다. 한 명은 초등학생이다. 세 사람 모두 큰돈을 상속 또는 증여받지 않고서는 아파트를 살 만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이다. 이 밖에 수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어 보이는 20대 초반 당첨자도 다수 있다.
세종시는 행정기관 이전에 맞춰 부동산 시세가 급등하면서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세종시에서 청약 1순위를 얻으려면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지나고 납입 횟수가 24회 이상이어야 한다. 또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전량 가점제로 배정된다. 하지만 이처럼 강화된 청약제도는 정당계약과 예비계약까지만 적용될 뿐 미계약분 발생 시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적으로 사업자의 재량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서울 아파트 분양에서 미계약분을 배정받고자 수천 명의 사람이 견본주택에 몰려드는 사태가 속출했다.

세종리더스포레는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만 있으면 미계약분 청약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청약통장이 있건 없건, 가구주이든 아니든 관계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요건이 느슨하다 보니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자녀 명의 등을 동원하는 신청자가 많아졌다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분양 관계자는 "주무관청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으로부터 미계약분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법에 따라 모집공고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계약분의 미성년자 당첨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뒤늦게 '칼'을 뽑아 들었다. 향후 세종시에서 주택을 공급할 때 예비당첨자 선정 비율을 현행 40% 이상에서 100%로 높이도록 하고 미계약분에 대해 공급 대상에서 미성년자를 제외하도록 법령 개정을 검토해 추진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당첨된 미성년자의 경우 자금 조달 계획 및 입주 계획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국세청에 증여세 탈루 여부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성년자 당첨자는 납득할 만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부모의 편법 증여로 간주된다.
이처럼 미성년자 당첨이 속속 나오게 된 배경에는 분양가 억제와 대출규제로 실수요자보다는 부자들이 더 유리하도록 청약 환경이 변한 영향도 있다. 청약 배정은 1순위 당첨자 중 청약요건 미비, 자금 조달 실패 등으로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스스로 포기한 물량을 예비당첨으로 돌린 후 여기서도 남는 물량을 미계약분으로 처리한다. 특히 아파트값은 급등하는 반면 분양가는 억제되면서 이른바 '로또 청약'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실수요자들은 대출규제로 인해 청약에 도전해볼 기회조차 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3년 사이(2014년 12월 대비 지난해 12월) 평균 15.34%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민간 아파트 분양가(주택도시보증공사의 월간 동향 자료 기준)는 2014년 12월 ㎡당 613만1000원에서 지난해 670만6000원으로 9.37% 오르는 데 그쳤다.
정부는 서울 강남3구와 과천시 등 고분양가 관리지역의 경우 적극적으로 분양가 억제 정책을 펴고 있다. 입주 후 주변 시세와 동조화되는 현상을 감안하면 결국 당첨자에게 과도한 시세차익이 돌아가는 환경이다. 이 과도한 시세차익 또한 자산가들에게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가점이 낮은 30·40대가 도전할 수 있는 주택은 그나마 전용 85㎡ 초과 중대형인데, 서울은 중대형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사례가 많다.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고가주택으로 분류돼 중도금 집단대출이 안된다. 대출이자를 충분히 감내할 만한 소득이 있더라도 5억원 정도의 목돈(분양가 9억원 기준)이 없다면 청약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이다. 소득이나 자산 규모에 관계없이 실수요자들이 공평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만든 제도가 오히려 현금부자들의 자산 증식 도구로 전락하는 꼴이다.
최근 분양한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써밋 역시 14.88대1로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됐다. 수도권 당첨자의 최저가점은 84㎡A형 64점, 84㎡T형 56점에 달했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자녀가 없거나 한 명인 30·40대 부부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점수다. 설사 당첨된다 하더라도 분양가가 9억원이 넘기 때문에 중도금 집단대출이 어렵다. 개포주공8단지, 서초우성1차, 고덕주공6단지 등 올해 분양 예정인 강남 재건축 아파트도 청약 로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직전 1년 사이 분양한 단지들의 분양가와 지금 주변 시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3.3㎡당 평균 분양가 4250만원이던 신반포센트럴자이는 거래는 안되지만 매도호가는 5000만원대 중반까지 치솟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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