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민자 연주로 만든 다문화 하모니
입력 2018-01-31 11:52 
시민밴드

서울 아트선재센터 3층 전시장에서 네 개의 화면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각 화면에서는 프랑스와 호주로 이주한 네 사람이 차례로 등장해 릴레이 연주를 펼쳤다. 각자 고향의 전통 음악 기법으로 새롭게 각색한 선율이다.
카메룬 출신 제랄딘 종고는 파리의 한 실내 수영장에서 두 손으로 물 표면을 두드리며 다채로운 퍼커션(타악) 비트를 만들어냈다. 다음 주자는 알제리에서 온 난민 음악가 모하마드 라무리. 키보드 연주에 맞춰 라이 음악(베두인족 양치기들로부터 유래된 음악)을 파리 지하철 안에서 부른다. 이어 몽골에서 온 부크출롱 갱보르게드는 시드니 뉴타운 길모퉁이에서 현악기 '마두금' 반주에 맞춰 날카롭고 깊은 음을 낸다. 수단에서 이민 온 아심 고레시는 해가 저문 브리즈번에서 택시를 몰다 즉흥적으로 휘파람을 분다.
이들의 연주가 끝난 뒤에는 흐릿하게 산란하는 불빛들이 네 개의 화면을 채운다. 이윽고 네 가지 소리들이 결합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룬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호주 작가 안젤리카 메시티(42)의 22분짜리 비디오 작품 '시민 밴드'다.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메시티는 "개인이 음악을 통해 고향으로 가고, 음악이 어떻게 우리를 연결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민자의 인권 문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메시티는 공동체와 소멸하는 문화적 전통, 영성(靈性)에 대한 관심을 소리와 몸짓 등 비언어적인 소통 방식으로 풀어내오고 있다. 2월 11일까지 열리는 그의 국내 첫 개인전 '릴레이 리그(Relay League)'에서는 모스 부호와 음악에 주목했다. 130여년 동안 해양 조난 통신에 사용됐던 모스 부호는 1997년 1월 31일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송출 후 사라졌다.
이번 전시장 2층 입구에 황동으로 만든 사운드 조각 작품 '수신자 전원에게 알림'이 설치돼 있다. 실제로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전신을 구성한 단음과 장음을 물리적으로 표현했다. 조각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전시장에 공명한다. 벽에 드리워지는 관람객의 그림자가 소리와 어우러져 교감하는 것 같다. 작가는 "발신과 수신이라는 모티브를 시청각적으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모스 부호는 음악으로도 연주된다. 전시장 2층에 3개 화면으로 이어진 영상 작품 '릴레이 리그'에서다. 첫번째 영상에서 연주자이자 작곡가 위리엘 바르텔레미는 파리 교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최후의 모스 전신을 정교한 악보로 번역해 드럼을 연주한다. 정확한 분석과 구상에 따라 빗자루와 드럼 스틱, 씨앗이 든 호주 오동나무 꼬투리를 번갈아 사용한다. 단음은 심벌, 장음은 베이스 드럼의 깊은 저음으로 표현하며 리듬을 만들어낸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남녀 무용수가 스튜디오 바닥에 앉아 몸으로 대화를 나눈다. 먼저 여자 무용수 에밀리아 위브론 베스터룬드가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시각 장애를 가진 신드리 루두네가 자신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마지막 영상에서는 첫 번째 영상과 동일한 사운드 트랙에 맞춰 춤을 추는 필리프 루랑소가 등장한다. (02)733-8947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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