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효명세자빈 죽책` 프랑스서 모국 품으로
입력 2018-01-31 11:43  | 수정 2018-01-31 14:27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제공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 冊封 竹冊)이 150여년 만에 모국 품으로 돌아왔다. 19세기 중반 이후 오랜기간 행방이 묘연하던 조선왕실 어책(御冊)으로, 순조 19년(1819) 효명세자빈 책봉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재질, 서체, 인각 상태가 훌륭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3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프랑스 개인 소장자로부터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구매한 뒤 지난 20일 국내로 들여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재단이 해당 죽책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건 지난해 6월 한 프랑스 경매를 통해서였다. 이에 경매사에 거래 중지를 요청했고,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던 할아버지에게 죽책을 상송받은 상속자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협의 결과 구매가격은 2억 5000만원.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을 활용해 사들일 수 있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제공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선왕실 어책이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서 왕실 의례용 도장 어보(御寶)가 돌아온 적은 있지만,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세자·세자빈 책봉 당시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하는 어책은 그간 국내로 돌아온 바가 없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글은 당시 우의정 남공철이 지었고, 글씨는 서사관 이만수가 쓴 것이다. 각각의 크기는 높이 25cm, 너비 17.5m로 균질하며, 6장을 모두 펼친 길이는 102cm에 이른다.
이 죽책이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됐는지는 아직 제대로 규명되진 않았다. 다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자국으로 가져간 것을 고려하면, 이 시기 유출된 것으로도 추정된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 죽책은 포함돼 있지 않았기에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그동안 여겨져 왔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제공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죽책의 주인공 효명세자빈(1808~1890)은 '조대비'로 불리던 인물이다.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로 11세에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와 혼인했다. 효명세자는 이른 나이 세상을 떠났으나, 이들 사이에 낳은 아들 환이 훗날 헌종(재위 1834~1849)이 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의 귀환을 계기로 외규장각에 있었던 또 다른 유물들의 소재가 파악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