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값 잡기에 무너진 용산 `명품단지`의 꿈
입력 2018-01-30 17:44  | 수정 2018-01-30 20:09
한남동 고급주택을 지향해온 나인원한남이 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보증을 받지 못하면서 주택공급업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사진은 나인원한남 조감도. [매경DB]
HUG, 나인원한남 분양승인 거부 공식 통보
서울 한남동 외인아파트 용지에 들어서는 고급 아파트 '나인원 한남'의 분양보증에 대해 불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나인원 한남 시행사 디에스한남은 후분양이나 임대 전환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고급 아파트 대신 일반 아파트로 분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30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나인원 한남 분양가를 놓고 최근 2개월 가까이 시행사인 디에스한남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이날 분양 승인 거절 통보를 했다. HUG 측은 고분양가가 강남권 등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할 경우를 우려해 분양보증을 승인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HUG가 분양보증 발급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드문 일로, 2016년 7월 강남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디에이치 아너힐즈' 사례 이후 처음이다. 당시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3.3㎡당 분양가를 강남구 평균 분양가격보다 13% 높은 수준인 4310만원으로 책정해 승인을 받지 못했으며, 이후 분양가를 조정해 재신청한 끝에 승인받았다.
앞서 디에스한남은 작년 9월부터 3개월간 HUG와 실무협의를 거쳐 작년 12월 1일 3.3㎡당 평균 분양가를 6360만원으로 책정해 분양보증 신청을 했다. 디에스한남은 HUG의 '고분양가 사업장 기준'인 '분양가가 인근 아파트 평균 매매가의 110%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에 맞춰 건너편 '한남더힐' 평균 시세와 비슷한 수준에서 분양가를 책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HUG는 '역대 최고 분양가' 승인에 난색을 보였다. '한남더힐'이 분양가 책정 기준이 돼야 한다는 디에스한남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한남더힐, 한남힐스테이트 아파트와 주상복합인 리첸시아, 한남동하이페리온1차, 용산한남아이파크까지 총 5곳을 비교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한남디에스에 지난 24일 전달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가구 수를 가중치로 둘 때 최근 이들 5곳의 평균 매매시세가 3.3㎡당 4018만원에 불과하다. 한남더힐이 6400만원으로 높지만, 나머지 4개 단지 평균 매매가격이 2600만~2802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나인원 한남이 고급 아파트를 고집할 경우 책정할 수 있는 최소 분양가를 5500만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양가도 HUG가 제시한 평균 분양가와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어서 HUG가 분양보증을 해줄지 분명치 않다.
디에스한남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한남더힐처럼 임대아파트로 시작한 뒤 분양 전환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후분양제 실시다. 일단 디에스한남이 스스로 금융 비용을 부담하며 전체 공사의 80%까지 지으면 HUG의 분양보증이 없어도 분양할 수 있다. 셋째는 고급 아파트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일반 아파트로 분양하는 것이다. 이 경우 4500만원 수준으로 분양하더라도 시행사가 약간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디에스한남은 LH로부터 나인원 한남 용지를 3.3㎡당 3100만원에 매입했다. 일반 아파트의 경우 표준 건축비는 3.3㎡당 400만원가량 든다. 가산비용 100만원을 고려하더라도 4500만원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한다면 이윤을 남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몇 개월 더 사업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디에스한남 측은 분양 전환이나 후분양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분양 전환은 한남더힐에서 진통이 있었던 전례가 있다는 점, 후분양은 시행사가 모든 사업 리스크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강도 높은 HUG의 분양가 규제에 건설사들도 떨고 있다. 일단 강남권에서 한두 달 내 분양이 예정된 단지들에 직격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3월 분양이 예정돼 있는 '개포주공8단지'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는 공무원연금공단 소유였다가 현대건설과 GS건설이 통으로 사들여 '개포 디에이치자이'로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분양 시점이 다가오면 분양가 책정이 한번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작년 11월로 예정됐다가 3월까지 밀린 분양이 더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건설사 측은 조심스럽게 3.3㎡당 4500만원 내외를 생각하는 분위기지만, 작년 개포시영 재건축 '강남 래미안 포레스트'가 4000만원대 초반의 분양가를 내면서 상황은 쉽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 지역의 다른 분양 단지들도 긴장하고 있다. 3월로 분양이 예정된 '마포그랑자이'는 전용 84㎡ 기준 8억원대 후반으로 건설사 측은 생각하고 있지만, HUG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GS건설 관계자는 "작년에 집값이 워낙 많이 올랐다. 일단 주변 시세의 110%까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분양가 개입에 나서면서 또 다른 분양가 통제 수단인 민간주택 분양가상한제 적용도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 8·2 부동산대책 후속조치를 발표하며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을 완화했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7일 발효됐다.
분양가상한제는 우선 3개월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12개월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넘거나 직전 2개월간 청약경쟁률과 국민주택 규모 청약경쟁률이 각각 5대1, 10대1을 초과하거나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어나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량적 요건으로 볼 때 강남은 이미 분양가상한제 적용 사정권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주택 공급에 미치는 영향도 있는 만큼 신중히 시장을 모니터링한 후에 적용하겠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인혜 기자 /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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