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길고양이에서 잡지모델까지…`히끄`의 묘생역전 스토리
입력 2018-01-19 15:39  | 수정 2018-01-25 15:15
잡지 빅이슈 171호 표지모델 '히끄' [사진 = 이신아씨 제공]

온몸을 감싼 새하얀 털과 하늘로 뾰족 솟은 귀, 토실토실한 볼.
귀여운 외모와 상반된 도도한 표정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 고양이는 잡지 '빅이슈(Bigissue)'의 171호 표지 모델이다. 빅이슈는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로 2010년 창간 후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재능 기부에 동참해 표지 모델로 출연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고양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동물이 표지 모델로 나선 것은 빅이슈 코리아 창간 이래 최초다.
모델로 발탁된 고양이는 '히끄'로 인스타그램 11만 팔로워를 소유한 SNS스타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진에도 '좋아요' 1만개를 거뜬히 받을 만큼 애묘인들 사이에서는 유명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히끄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히끄의 집'은 출간한 지 한 달 만에 5쇄를 찍었으며, 교보문고에서 일주일 넘게 종합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길고양이 시절 히끄 [사진 = 이신아씨 제공]
지금은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3년 전 까지만 해도 히끄는 주인 없는 제주도 길고양이였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중 민박을 운영하는 이신아 씨(31·여)에게 발견돼 새 삶을 시작했다. 반려동물에 관심조차 없던 이씨가 '히끄 아부지'를 자처하며 유기동물을 위한 캠페인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험천만한 도로 한복판에서 아늑한 집으로 발을 들이기까지,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히끄와 히끄의 삶을 180도 바꾼 반려인 이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히끄와 반려인 이신아씨(31) [사진 = 이신아씨 제공]
-온라인상에서 히끄의 인기가 대단하다. 인기 비결이 있나.
▷대부분 집에서 히끄와 시간을 보낸다. 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할 기회가 많아져 SNS에 사진을 하나 둘 올리게 됐다. 팔로워분들이 히끄의 편안한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히끄를 처음 본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민박을 차리기 전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했다. 2014년 6월쯤, 청소를 하고 있는데 흰 고양이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주인이 있는 고양이가 외출했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눈에 띄었다. 신경이 쓰여 밥을 주자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먹었다. 자세히 보니 귀는 곰팡이로 덮여 탈모가 있었고 몸은 삐쩍 말라 있었다. 적어도 한 달 이상 방치된 듯 보였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데려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반년 동안 밥만 챙겨줬다.

-어쩌다 분양을 결심했나.
▷어느 날 히끄가 행방불명이 됐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밥을 먹으러 왔었는데 20일간 안 보이니 나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실종된 지 21일째 되는 날 귀 끝이 찢어지고 발톱이 빠진 채로 나를 찾아왔다. 치료를 해준 뒤 새 주인에게 보내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유기묘인데다 나이도 적지 않아 분양이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어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털색깔이 희끄무레해 '히끄'라고 이름을 지었다.
[사진 = 이신아씨 제공]
-그동안 유기동물을 돕는 다양한 캠페인에 참여했다. 히끄와 함께 지낸 이후 관심이 생긴 건가.
▷그렇다. 부끄럽지만 히끄를 키우기 전에는 반려동물을 펫숍에서만 사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히끄 덕분에 유기 동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특히 제주도에서 지내는 유기동물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제주도는 육지보다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환경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이곳에서 5년 넘게 살았지만 버려진 개들이 이렇게 많은 섬인 줄 몰랐다. 특히 휴가철이 지나면 개나 고양이의 수가 많아진다. 유기 동물 만큼 곳곳에서 학대당하는 동물도 많다. 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길 바랐다.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나.
▷주로 상품을 기획해 판매한 수익금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디자인 상품은 개인이 혼자 기획하기 힘들기 때문에 관련 기업과 함께했다. 반려동물 수제 간식 회사 '바잇미'와는 함께 배지를 만들어 남양주 유기동물 보호소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했다. 또 작년 4개월 동안 임시 보호하며 치료해줬던 유기견 '김신'의 자수를 넣은 손수건을 만들었다. 스토어팜을 열어 직접 판매와 배송을 했고, 수익금 전액을 제주 유기견 센터 '제주동물친구들'에 기부했다. 직접 만든 물품으로 4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할 수 있어 뿌듯했다.
[사진 = 이신아씨 제공]
-히끄를 만나기 전과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히끄를 만나기 전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5개였다면, 히끄를 만나고 난 후 10개로 늘어났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해졌고 행복해졌다.사실 어렸을 적, 매일 저녁 집에 들어가기 싫어 대문 앞을 서성였다. 그리 행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지만 히끄와 살면서 나 또한 따뜻한 집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히끄에게 받은 사랑을 또 다른 '히끄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홀로 살아남는 게 아닌 길 위의 동물과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은 거다.

-'히끄 아부지'로서 목표가 있다면.
▷히끄가 나를 만난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주인을 만나 사랑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게 꿈이다. 현재 히끄 사진이 들어있는 파노라마 엽서를 준비 중이다. 수익금 전액은 제주도 유기동물을 위해 쓸 예정이다. 에세이집 정산이 끝나면 저자 인세도 제주동물친구들에 일부 보낼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버리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오래전하고 싶다.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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