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대로면 중증외상센터·중환자실 미래 없다"
입력 2018-01-11 20:11  | 수정 2022-05-09 13:06
대한의사협회가 11일 주최한 `대한민국 의료,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다`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 시스템 개선을 위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대한의사협회]

"우리 의료현장을 보라. 경증 환자는 3차병원을 찾아오니 교수가 진료를 보는데, 정작 중증·응급 환자는 전담의가 없어 수련의와 비숙련 간호사가 진료하는 실정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제2, 제3의 이대목동병원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인력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비정상적인 수가 등은 전국의 모든 신생아중환자실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증외상센터도 마찬가지다"(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
"중증외상환자가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소위 '골든타임'에 어느 병원으로 가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30%에서 70%까지 차이난다. 중증환자들은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데, 엉터리시스템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이강현 대한외상학회 회장)
"병원에 서글픈 우스개소리가 있다. 환자들을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이 적자를 보는데, 돌아가셔서 영안실로 가는 순간 흑자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오겠나. 지금 우리 의료현장이 이렇다."(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리나라 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생생한 고발과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대한의사협회가 11일 주최한 '대한민국 의료,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다'토론회 현장에서다. 의료진과 토론자들은 "이대로 방치하면 10년 안에 중환자실과 중증외상센터가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며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사명감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강현 대한외상학회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28만~3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데, 이 중 30%는 살릴 수 있는 환자"라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시스템을 개선해 10% 이하로 낮추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은 중환자실과 중증외상센터를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 가장 추운 '엄동설한'지역에 비유했다. 임 회장은 "작년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보면 인공호흡 치료를 받은 환자의 사망률이 병원에 따라 27~79%까지 다양했다. 치료 수준이 미국과 아프리카가 섞여있다는 뜻"이라며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싸구려 의료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정부가 2012년부터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기 시작해 17개 센터가 지정됐지만 의료진을 구하지 못해 10개 센터만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증환자의 치료시간은 '모래시계'와 같다. 사고 발생후 소위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시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 언제 환자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365일 24시간 내내 외상 환자만을 위한 공간과 의료기기를 확보하고 의료진이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비효율과 적자의 원흉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박찬용 대한외상학회 총무이사는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의료진이 달라붙어서 경각에 달린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말 보람있는 일"이라며 "가정과 병원의 눈치를 덜 보고 보람을 느끼며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은 중증외상센터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중환자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중증외상센터나 응급실 환자 절반이상이 중환자실로 오게 되는 만큼 중환자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부회장은 "나이별로 인구 10만명당 중환자실 입실률을 보면 60세를 넘어가면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70세부터 사망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며 "우리나라 인구구조를 볼 때 중환자실 이용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환자실 시스템 개선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내과계 중환자실 대표적 질환인 패혈증의 우리나라 사망률은 35%~40%로 20% 내외인 선진국의 두 배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의 생존 퇴원율은 37%로, 역시 세계 평균인 60%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중환자실도 숙련된 의료진이 모자라 소중한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 부회장은 "오죽하면 같은 지역에 살아도 어느 병원에 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고 하겠나"며 "중환자실 질의 핵심은 숙련된 인력이다. 전담전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H1N1 독감환자의 중환자실 사망률이 전담전문의 유무에 따라 두 배의 차이를 보였다.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 수에 따라 환자 사망률은 큰 차이가 났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응급의료의 최전선인 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지금은 민간에 떠넘기다못해 징발에 가깝게 억지로 끌고가는 구조"라며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사명감에서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지 단순히 수가를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토론자들은 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은 필수의료이자 공공의료인만큼, 정부와의 수가 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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