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선박 환경 규제가 조선·해운 동아줄?…"아직 기대 이하"
입력 2018-01-09 13:36  | 수정 2018-01-10 13:38

조선·해운업계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환경규제 강화를 위기 탈출의 기회로 활용하려 하지만, 글로벌 선사들은 아직 국내 조선·해운업계가 기대하는 규제 대응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IMO는 오는 2020년부터 선박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 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출 예정이다. 조선업계는 선사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을 발주하거나 기존 선박에 탈황설비(스크러버)를 장착할 것으로 보고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홍보해왔다. 해운업계도 보유선박이 많은 글로벌 선두권 선사들이 막대한 투자를 하는 동안 벌어진 선대 규모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은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단 황 함량이 낮은 저유황유를 쓰며 버티려는 것이다. 저유황유는 기존 선박유인 벙커C유 대비 50% 가량 비싸지만 기존 선박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LNG추진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글로벌 선사는 프랑스 CMA-CGM 한 곳에 불과하다. CMA-CGM이 발주한 LNG추진 컨테이너선은 현재 중국 조선소가 짓고 있다.

중국 조선업계에 '세계 최초의 LNG추진 컨테이너선' 건조 타이틀을 뺏긴 한국 조선업계는 풍부한 LNG운반선 건조 경험을 통해 확보한 화물창·LNG재기화 등의 기술을 홍보하며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선사들 사이에서는 LNG추진 컨테이너선 건조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9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각각 5척과 6척의 초대형컨테이너선 건조를 맡긴 세계 2위의 스위스 MSC는 당초 LNG추진선을 고려하다 탈황설비 장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사들이 선뜻 LNG추진선 건조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선박에 LNG를 공급하는 벙커링 인프라가 부족한 데 있다. 선박 추진연료로도 LNG가 사용되기 시작한 뒤 LNG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여러 항구에 기항하며 화물을 싣고 내리는 컨테이너선에 LNG 추진엔진을 장착하는 건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LNG추진선을 새로 건조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환경규제에 대응하는 방법이 탈황설비 장착이다. 선박을 새로 건조하려면 1000억원 이상의 건조비용이 들지만, 탈황설비 장착 비용은 수십억원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은 탈황설비를 독자 개발했다며 앞으로 연간 50기 이상을 수주하겠다고 지난 4일 밝혔다.
하지만 스크러버 장착 움직임도 아직은 활발하지 않다. 클락슨리서치는 지난해 12월초까지 탈황설비를 장착한 선박은 전 세계에서 240척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했다.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보유한 선박 782척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그나마도 화물선보다는 여객선 위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탈황설비를 설치하면 선박의 적재 공간을 희생해야 한다"며 "설비 자체도 공간을 차지하고 걸러낸 유해물질을 저장할 공간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육지에서 유해물질을 처리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환경규제 강화에 따라 선박의 엔진이 아니라 연료 시장이 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유업계가 저유황유 공급을 늘리면 현재 50% 수준인 벙커C유와의 가격차이가 좁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벙커C유 가격은 원유보다 저렴한 수준"이라며 "선박 추진연료가 아니면 팔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SK에너지는 오는 2020년까지 1조원을 들여 일산 4만배럴 규모의 탈황설비를 설치하기로 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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