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얼면 부피 늘어나는 `물`, 이유를 찾았다
입력 2017-12-22 06:11 
물 분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물 '클러스터'의 두가지 구조. 위 구조가 가벼운 구조(고밀도)이며 아래 구조가 무거운 구조(저밀도)다. 물은 4도 이하에서 가벼운 구조가 늘어나면서 밀도가 높아지고 부피가 팽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제공=사이언스>

추운 겨울, 물을 가득 채운 패트병을 밖에 두면 얼음이 만들어지면서 패트병이 팽창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액체였던 물이 고체인 얼음으로 변하면서 부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액체 중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은 물이 유일하다. 이 원인을 두고 과학자들은 여러 이론을 세웠지만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국이 만든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이같은 물의 비밀을 풀어냈다.
앤더슨 닐슨 스웨덴 스톡홀롬대 교수와 같은 대학 김경환 연구원, 이재혁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 등 공동 연구진은 4도 이하 온도에서 물이 결합방식이 다른 두 가지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 21일자(현지시간)에 게재됐다.
물은 다른 액체와 달리 영상 4도에서 부피가 가장 작은 무거운 상태가 되고, 온도가 낮아질수록 부피가 증가하여 가벼운 상태가 된다. 추운 겨울에도 호수나 강이 표면부터 얼어들어가 물고기 등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이유다. 그러나 물이 이같은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만 존재해왔다. 펨토초(1000조분에 1초) 단위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물의 구조 변화를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펨토초 단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0도 이하로 냉각된 물이 얼음으로 결정화되기 전 분자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방사광가속기에서는 20펨토초마다 한번씩 X-선 레이저를 쏠 수 있다. 연구진은 1um(마이크로미터·1um은 100만분에 1m) 크기의 물방울을 얼리면서 X-선 레이저를 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박용준 포스텍 부설 가속기연구소 기획실장은 "X-선 레이저가 물방울에 닿으면 산란된다"며 "산란된 X-선 레이저의 이미지를 통해 물 분자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물은 결합 방식이 다른 두개의 구조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소 두개와 산소 원자 한개로 이루어진 물 분자는 여러개가 결합해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이 클러스터의 구조가 한개가 아닌 두 개였던 셈이다. 4도 이하의 환경에서는 물을 구성하고 있는 클러스터의 구조가 밀도가 낮고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물이 0도에 가까워질수록 가벼운 구조가 늘어나면서 얼음의 부피는 점점 커졌다. 영하 44도가 되면 두 가지 구조가 같은 비율을 같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물이 갖고 있는 두가지 구조는 동시에 존재하며 두 상태가 서로 바뀌는 '요동현상(fluctuation)'이 나타남을 밝혀냈다.
박용준 실장은 "학계에서는 거의 1세기 동안 물의 특이하고 신비로운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어왔다"며 "이번 실험으로 물이 두가지 구조를 갖고 공존한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를 이용해 물이 갖고 있는 높은 열 흡수력, 기름과는 결합하지 않는 특성 등 물이 갖고 있는 비밀을 밝혀내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연구는 미국, 일본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시도해오던 연구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성공함으로써 4세대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우수한 성능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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