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12월 11일 뉴스초점-형량 낮추려 꼼수 기부
입력 2017-12-11 20:08  | 수정 2017-12-11 20:50
얼마 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기가 낸 기부금을 다시 달라는 거였죠.
알고 보니, 강제 추행 혐의를 받는 아들의 형량을 줄일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9백만 원을 기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량이 생각만큼 줄지 않자 뻔뻔하게도 환불을 요구한 거죠.

이처럼 성범죄자나 그 가족들이 면죄용으로 기부금을 내는 사례가 부쩍 늘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 9월까지 전국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범죄 가해자 측의 기부는, 확인된 건만 101건.
2년 전, 지하철 몰래 카메라범이 여성단체에 후원을 했다고 서울의 한 지방법원이 형량을 낮춰준 후 이런 꼼수 기부가 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불순한 의도의 기부를 걸러내고 싶어도, 익명으로 기부를 하고 또 단체엔 알리지 않고 법원에 영수증을 제출하니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런 '유전무죄 무전유죄' 꼼수는 공탁제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일부 가해자들이 감형을 받으려고 공탁을 악용하거든요. 가해자가 법원에 공탁금을 걸면 설사 합의가 안 됐더라도 피해 배상의 노력으로 참작되거든요.

반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범죄에 대한 형량 자체가 우리보다 높고, 특히 성범죄 같은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영국만 해도 공탁은 물론, 심지어 합의를 했더라도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판결의 중요 기준으로 삼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꼼수 기부와 면죄용 공탁이 판을 치지 않도록, 우선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또한, 양형에 많은 재량권을 갖고 있는 재판부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형을 내리는 게 그들의 주 업무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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