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섀도보팅 폐지 발등의 불…"주총 서두르자"
입력 2017-12-05 17:35  | 수정 2017-12-05 21:53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대우전자부품이 오는 19일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알리는 공고를 최근 냈다. 주총 안건으로는 감사 선임의 건 등이 올라와 있다. 내년 감사 선임이 어려울 것을 대비해 연내 주총 개최에 나선 것이다.
같은 날 임시주총을 여는 코스닥 기업 빅솔론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업용 소형 프린터를 제조하는 빅솔론의 임시주총 안건에도 감사 선임 건이 포함됐다. 현 김영배 감사 임기는 내년 3월까지이지만, 임시주총에서 이한수 전 링크젠 부사장을 신규 감사로 선임하기 위한 절차다.
상장회사 상근감사나 감사위원회 위원(사외이사) 등이 임기를 남겨 놓고 대거 재선임되거나 중도 퇴임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상장사들이 내년 의결권 대리행사(섀도보팅) 제도 폐지를 앞두고 미리 임시주총을 열어 연내에 감사 선임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이달 5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10곳이 임시주총 개최 공시를 냈다. 같은 기간 코스닥 기업 37곳이 임시주총 공시를 냈다. 이미 지난달에 임시주총을 개최한 상장사만도 66곳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임시주총을 연 기업이 12곳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5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섀도보팅은 소액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 주총이 열리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예탁결제원이 대신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도 참석한 주주들이 행사한 찬반 비율대로 의견을 낸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그림자 투표'라고도 불린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기업들은 '주총 대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통상 국내 기업들의 주총에선 소액주주 참석률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에 섀도보팅이 신속한 주총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내년에 섀도보팅이 사라지면 상장사들은 당장 감사·감사위원 선임을 못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일반 안건도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난항을 겪는 판에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감사위원 선출 안건은 통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더라도 기존 감사가 계속 '기업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최악에는 법원에 새 감사를 선임해 달라고 요청하고 과태료를 내야 한다. 특히 감사가 수차례 연임해서 다음번에 교체할 필요가 있는 회사들은 임시주총을 서두르고 있다.
오는 13일 임시주총을 소집한 코스닥 A기업은 기존 감사의 임기 만료일이 2019년 3월로 아직 1년 이상 남아 있지만 임시주총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하기 위한 감사 교체의 건을 안건으로 올려놨다. 기존 감사가 올해로 10년째인데 만약 연내에 교체하지 않으면 당분간 감사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심지어 감사위원회로 운영되는 회사들은 위원회 구성이 안 될 경우 감사위원회 미설치 등 지배구조에 관한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될 수 있다. 주총이 불발돼 감사위원회 구성이 안 되면 상장폐지 위험까지 뒤따른다는 얘기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상장사들이 내년에는 보통 결의 요건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임시주총을 서두르고 있다"며 "내년에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들여 주총에 필요한 주주들을 실제 모아야 하는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B상장사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회사는 주총을 위해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주주명부상 주소만 보고 소집해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장사협의회는 5일 금융위원회를 찾아가 기업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섀도보팅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그동안 기업들이 유예기간을 줬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고 추가 유예기간을 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한예경 기자 /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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