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KB금융노조 `월권` 제동…ISS "경영권 간섭 마라"
입력 2017-11-09 17:55  | 수정 2017-11-09 20:10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을 흔들려는 한국 금융권 노동조합의 행태에 결국 해외 전문기관까지 나서서 제동을 걸었다. 최근 정치인들을 끌어들여 금융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금융회사 노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최근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KB금융지주의 주주총회에 앞서 KB금융 노조 측이 제안한 안건 2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먼저 시민운동 활동가 출신인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자는 노조의 안건에 대해 "과거 정치 경력이나 비영리단체 활동 이력이 금융지주사의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며 "기존 이사회에도 법률 전문가가 있어 (하 변호사의) 전문성이 중복된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현대증권 사외이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ISS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지배구조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정관을 변경하자는 노조 측 안건에 대해서도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이 두 개의 안건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가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올렸다. KB금융 노조는 0.18%의 지분을 갖고 있다. 노조가 소수 지분으로 이 같은 안건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지분 요건이 완화돼 0.1%의 지분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ISS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선임과 허인 국민은행 영업그룹 부행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을 밝혔다. KB금융 주주의 68%는 외국인이다. ISS는 전 세계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내놓는데,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결권 행사 때 ISS 의견을 상당 부분 참고한다.
KB금융 노조는 사측과 표 대결을 벌이겠다며 의결권 모으기에 나섰지만 ISS 의견에 따라 안건 통과는 한층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출신 강윤식 강원대 교수는 "노조 몫의 사외이사 선임은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KB금융 노조의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금융사 노조의 경영권 흔들기는 최근 더욱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하나금융 계열사 노조가 구성한 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금융감독원에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KEB하나은행장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이들 경영진이 정유라 특혜 대출, 이상화 전 본부장의 특혜 승진과 관련해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게 공동투쟁본부 측 주장이다.
여기에 정치인들까지 노조 편에 가세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안 대토론회'에 참석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본은 노조가 적극적으로 은행 경영에 참여하고 종업원조합위원장(노조위원장)이 나중에 은행장이 되는 시스템"이라며 "노동이사제나 주주제안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금융노조를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국회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이학영 의원 역시 "노동이사제 도입은 대통령 공약에 포함돼 있으며 국정과제에도 담겼다"면서 "노동이사제 도입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을 등에 업은 노조의 경영권 개입 시도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 체계가 자리 잡은 것인데 개별 노조 주장이 마치 업계의 구조적 문제로 비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노조 출신 인사들이 정치로 진출해 너무 구체적인 사안에까지 간섭하고 있다"며 "노조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사외이사까지 진출하려는 걸로는 부족해 정치인들이 '엄호사격'을 하는 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최근 '관치금융' 논란과 관련해 "주식회사는 사적 자치 부문이고 노사 관계자들의 합의가 우선인데 정치가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도 "근로자를 대변하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특정 정치적 성향이 부각되는 인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승환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