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숨은 주역②] 마동석의 ‘왼팔’, 맛깔난 능글형사 허동원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본 연극에 홀딱 빠져 무작정 대학로에 입성한 부산 사나이. 친구의 지인이던 송새벽을 우연히 만난 뒤 깊은 인상을 받고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연극 무대에서 쭉 활동해오다 몇몇 영화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 최근 ‘범죄도시(강윤석 감독)를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입증했다. 배우 허동원(37)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벌써 400만 관객을 훌쩍 넘었다. 곧 500만이 코앞이 아니냐”라며 축하 인사를 건네자, 허 배우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실상 자신의 첫 상업 영화 도전작인 ‘범죄도시의 예상 외 대박에 어안이 벙벙한 듯 했다. 대부분 배우 생활을 무대 위에서 보내온 그가 (주요 배역을 처음 맡은 상업 영화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뤄낸 숨은 주역이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극 중 일명 ‘가리봉동 히어로 마석도 형사(마동석)의 곁을 지키는 형사 오동균을 연기한 그는 사실 오디션 당시에는 형사가 아닌 조선족 캐릭터를 준비해갔는데 오동균에 합격했다. 준비 시간이 충분치 않아 걱정이 많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워낙 좋았던 데다, 모든 배우들이 서로 간절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양보한 덕분에 빠르게 적응했다”고 말했다.

‘범죄도시로 얼굴을 알린 배우 허동원. 제공｜키위미디어그룹

그동안 정말 많은 오디션을 봤는데 연극 스타일의 연기를 지적받으며 수없이 탈락하곤 했죠. 이번엔 제작진이 그 연기를 좋게 봐주셔서 운 좋게 합류하게 됐는데, 진짜 운은 ‘인복이었어요. 마동석 윤계상 선배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정말이지 돈독한 우애를 자랑했죠. 첫 원톱 주연인 마동석, 첫 악역 도전인 윤계상, 그 외 저와 같은 무대 출신 중견 신예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우려감을 워낙 많이 나타냈었거든요. 모두가 각자의 고민을 안고 죽기 살기로 뛰어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함께 호흡을 많이 맞췄던 마동석에게는 수시로 고민 상담을 받았다고. 허동원은 아무래도 긴 기간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외롭게 걸어왔기 때문에 조급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형님 역시 ‘난 그동안 형사 아니면 깡패(건달)만 해왔어라며 저를 도닥여 주시곤 했는데 그 분의 진심어린 조언과 경험담들이 엄청난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남자 배우들이 흔히 갖는 연기 갈증과 불안함, 매너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리 똑같은 캐릭터를 계속 맡는다고 해도 다르게 연기한다면 절대 안 똑같다. 물론 대중들은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고, 잘 티도 안 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 스스로 매번 아주 조금이라도 이전과 다르고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누군가는 분명 알아본다. 널 가지고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분명히 생길 거다.라는 말이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그 전까지 저의 머릿속을 헤집었던 많은 잡념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유독 실험 정신이 투철했던 현장이었단다. 감독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실함이 느껴지는 배우들로 구성하고 싶었다고. 실제로 현장에는 주연부터 조연, 스태프까지 비매너적이거나 모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허동원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인한 절실함과 타고난 선함이 뭉쳐져 어떤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단 한 사람도 튀려고 욕심내지 않고 주변에 마구 퍼주는 분위기였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달려간 것”이라고 회상했다.
워낙 경쟁작들에 비해 상대적인 약체였는데, 관객들조차 우리의 작품을 절실하게 찾아줬어요. 상영관 수도, 시간대도 분명 열악했는데도 저희 작품을 찾고 호평을 보내주시고 응원해주셨죠. 그런 면에서 우리의 진심과 관객의 진심이 맞닿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러워요. 분명 영화 작업을 한 건데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마친 것처럼 배우 한 사람 한 사람, 관객들과의 호흡이 가까운 경험이었으니까요. 제 생애 다시는 없을 경험이겠죠.”

‘범죄도시 흥행 대박에 감격스러운 배우 허동원(왼쪽에서 두번째). 제공|키위미디어그룹

끝으로 그는 ‘범죄 도시란 내게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하며 겪을 어떤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고마운 에너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현장에 가면 분명 또 다른 고뇌와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올 테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도록 나를 끌어 올리는 값진 추억, 그리고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10여년이 넘게 무대 생활을 하면서 분명 수차례 슬럼프를 겪었고,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던 시간도 있었어요. 그 때마다 타고난 긍정적인 사고로 ‘언젠가 나도 인생 작을 만날거야 ‘언젠가 어떤 역할이든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위기를 극복해왔죠. ‘범죄도시는 그런 면에서 앞으로 제가 무수히 겪을 많은 시련을 뛰어넘게 해줄, 정말 고마운 또 현실적인 원동력이 될 거예요. 작품 자체도 너무나 좋지만 그 안의 사람들, 촬영장의 공기, 주고 받은 진심. 그 아름다운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