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韓관광, DMZ 등 한국만 가능한 경험 팔아야 `히든챔피언`"
입력 2017-10-15 15:12  | 수정 2017-10-16 16:20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뮤지컬 등을 공연하는 한 대형 극장은 입장할 때 티켓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입장은 '공짜'다. 그러나 공연 자체가 무료라는 말은 아니다. 업체측은 공연장 각 좌석에 센서를 달아놨다. 관람객이 웃거나 환호할때 마다 센서는 이를 감지하고 건당 30센트씩 요금을 매긴다. 쉽게 말해 울고 즐긴 경험과 만족도 만큼 돈을 내라는 것이다. 단 '바가지 요금'을 방지하기 위해 상한가격은 1인당 24유로(3만3060원)로 제한했다. 이 극장은 입소문을 타면서 현지인 보다 외지인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손가락 끝 하나로 항공기부터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텔방까지 간편하게 예약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도래한 지 오래다. 혹자들은 VR(가상체험)·AR(증강현실)기기가 관광 자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강소기업을 다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헤르만 지몬 지몬 쿠허 앤 파트너스 회장은 "관광산업 쪽에선 사회가 디지털화할수록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경험'을 파는 것이 최고의 '히든챔피언(잘 알려지지 않은 강소기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4차산업시대 한국관광산업의 히든챔피언 전략'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7 글로벌 관광·레저포럼(매일경제-GKL 공동주최)'에서 주제 발표자로 지몬 회장은 "관광산업에는 늘 안보·정치·외교 등 불안한 변수가 존재한다"며 "이런 변수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경험'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 둘러본 비무장지대(DMZ) 관광, 용인 민속촌 등을 예로 꼽았다.
지몬 회장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서로 맞대고 있는 세계 유일한 장소인 DMZ는 그 자체로 대단한 경험을 제공한다"며 "30~40년 같은 상황이었던 독일인 한 테도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관광업계에선 대형쇼핑몰·전시장·테마파크 등 시설투자에 '올인'하고 있지만 이런 하드웨어적인 투자는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에 따른 '금한령'(한국관광·문화 등 금지)처럼 외생 변수가 발생하면 리스크가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의 관점에선 화려하지는 않아도 서울과는 달리 도시 전체가 역사의 현장인 경주도 매력이 많다"며 "한국의 각 지역별 진정성과 가치, 참모습을 드러내는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관광산업의 선진화 및 차별화를 위해 가격차별화를 막고 있는 규제부터 걷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몬 회장은 "독일에서도 여전히 에버비앤비 우버 등에 대한 불법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이들의 계속적 성장은 결국 소비자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가격차별화를 규제하게 되면 결국 서비스 공급자들도 서비스 차별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관광상품과 갚은 서비스의 가격은 곧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의 가치이며 똑같은 상품이라도 개별 소비자들에게 다른 가치가 적용될 수 밖에 없는 데 4찬 산업혁명 시대에선 이른 개별 소비자의 만족 가치를 측정하고 정확한 가격을 매기는 것이야 말로 '히든 챔피언'의 핵심 전략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항공요금을 예로 들었다. 지몬 회장은 "30년 전 항공료는 3달 전 예약하던 3일 전 예약하든 동일했으나, 지금은 시간·분 단위로 가격이 바뀐다"며 "클릭 싸움에서 져 내가 옆집 보다 항공료를 얼마 더 냈다고 사람들이 심각한 문제로 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럽 전역에 영화관 체인을 보유한 한 업체는 개봉 첫날 10유로 였던 관람비를 둘째, 셋째 날로 가면서 조금씩 떨어뜨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첫날 관람료가 9% 올렸지만 관람객은 전체적으로 22% 늘어났고, 회사 수익도 종전 대비 37% 급증했다"고 말했다.
관광산업에도 VR·AR 등 최첨단 기술이 접목되는 등 디지털화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대면(對面)서비스'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는 견해도 내놨다. 그는 "온라인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관광지에 대한 정보도 검색을 통해 충분히 얻고 여행사들이 해오던 일이 디지털화 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디지털로 대체가능한 것과 대체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유명 맛집에 들러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나 관광지에서 우연히 낯선 이들을 만나는 설레임을 VR과 AR로 구현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지몬 회장은 경영전략과 마케팅, 특히 가격결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 교수, 마인츠 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MIT, 프랑스 INSEAD, 일본의 게이오 대학교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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