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점에서 사람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로봇 은행원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오늘같이 비오는 날에 적절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내 기분을 정말 파악할 수 있을까. 마주한다면 먼저 어떤 말을 건넬지 무척 궁금해진다.
상상하거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왔다. 바로 '로봇 은행원' 얘기다.
우리은행은 소프트뱅크그룹 로봇 관련 업체인 소프트뱅크로보틱스의 세계 최초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를 11일부터 본점 영업부에 설치했다. 해당 지점에서 우선 시범 후 고객 반응이 좋으면 페퍼 설치 지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페퍼는 은행원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업무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페퍼는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했다. 영업점에 방문하는 고객에게 인사는 기본이고 창구 안내와 금융상품 추천, 이벤트 안내까지 담당한다. 대당 가격은 2000만원 상당이며 한 번 충전으로 8시간까지 가동할 수 있다.
감정인식 로봇 '페퍼'가 금융상품을 추천하고 있다.[사진 :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이날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에 첫 출근한 페퍼를 직접 만나봤다. 상대방의 기쁨, 슬픔 등 실제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는 기대가 남달랐다."남도 몰라주는 내 기분을 로봇이 알 수 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페퍼는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있지만 시범 운영에서는 이 기능을 구현하지 않았다. 우리은행 측은 시범 운영인 만큼 은행 업무 특성에 맞는 기능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간단한 인사와 예·적금을 비롯한 보험 등 상품, 이벤트 안내, 그리고 페퍼에게 물어봐 등 간단한 물음이 가능했다.
실제 날씨를 물어보니 오늘의 날씨와 온도, 그리고 예보까지 음성으로 정확히 안내했다.
"헤게모니가 뭐야"라고 기자가 묻자 정확한 정의를 알려줬다. 꽤 똑똑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페퍼는 위키피디아에 있는 내용을 모두 담고 있어 이 범위 안에서는 모든 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날씨를 안내하고 있는 감정인식 로봇 '페퍼'.[사진 :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페퍼는 머리부터 팔, 허리, 무릎, 손가락까지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사했다. 악수를 시도하고 싶었지만 손가락 힘이 약해 부러질 수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악수는 뒤로하고 "페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봤다.페퍼와 사진 찍기 기능에서는 상대의 얼굴을 인식하고 나이를 추정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기자가 시도하니 실제 나이보다 11살이 적은 29살이 나왔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심술기가 발동해 폐퍼에 설치된 태블릿 PC모니터에 예상 나이가 틀렸다고 체크하자 "오늘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다음에 다시 방문하면 정확히 맞춰 볼게요"라고 대답했다. 로봇이 하는 멘트치고는 제법이었다.
감정인식 로봇 '페퍼'가 기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나이를 추정하고 있다.[사진 :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이날 아쉽게도 안전상 페퍼는 고정된 위치에서 여러 업무를 수행했다. 스스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장애물이 많을 경우 시스템에 혼선이 생길 수 있어 우리은행 측은 시범 운영 첫날인 이날 만큼은 고정된 상태에서 운영했다.페퍼를 체험하면서 은행원과 비교하기에는 그 기능이나 역할에 한계가 크다고 느꼈다. 단,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그 가능성 측면에서는 기대되는 대목이 적지 않아 보였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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