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입력 2017-10-08 14:42  | 수정 2017-10-09 13:28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오른쪽)이 지난 3일 `한반도의 긴장`이라는 주제로 미국 템플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100여명의 미국인이 참석했다. [사진 = 전인범 전 사령관 페이스북]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해 한·중·일 무역이 중단된다면 미국과 조지아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이나 가시나요? 여러분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뀔 것입니다."
작년 7월 중장으로 전역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연수 중인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59)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핵 위협을 우려하는 미국인들을 만나면 먹고사는 문제부터 이야기한다.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 케너소주립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난 전 전 사령관은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자며 경제 이야기를 꺼냈다.
청중의 관심을 끈 전 전 사령관은 "당신의 동맹이자 친구인 5000만명의 한국인과 1억5000만명의 일본인도 전쟁으로 위험에 빠질 것이다. 이런 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반도 갈등이 평범한 미국인의 삶과 얼마나 밀접히 연관돼 있는지 설명하는 그만의 고유한 강연 방식이다.
전 사령관은 이런 방식으로 작년 10월부터 미국 전역의 대학교와 연구소, 로펌 등을 찾아 한반도의 갈등이 그들의 일상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전 사령관은 8일 매일경제신문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과 달리 미국인은 북한의 수사적 위협에 익숙하지 않고 소련과의 핵전쟁 위협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 한반도 상황에 큰 우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긴장 상태는 "결국 (북미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어 특별한 주의도 필요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도 큰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다양한 계층의 미국인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설명하는 강연회에 참석하고 계시다. 평범한 미국인은 북핵 위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미국인들은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 큰 우려를 하고 있다. 한국과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즉 우리처럼 북한의 수사적 위협에 익숙지도 않거니와 소련과의 핵전쟁 위협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북핵 위협을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긴장 상태가 결국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강연 동영상을 봤는데 북핵 문제가 야기하는 외교안보 문제보다 경제적 여파를 먼저 꺼내시더라.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의외로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외의 국가에 대해 세부적으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상황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는 평범한 미국인들에게는 한반도 갈등이 이들에게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복잡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달 초 미국 외교정책연구소에서 열린 `미 중산층과의 대화`에 참석해 전인범 전 사령관의 강연을 듣고 있는 미국인들의 표정이 흥미롭다 [사진 = 전인범 전 사령관 페이스북]
◆미국인들 한국에 대한 관심없어 '코리아패싱' 현상 심각◆
―강연을 하며 느낀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K-POP과 6.25 전쟁, 한국인 야구선수 정도다. 이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관심이 북한에 쏠려 있다. 많은 이들을 현 상황을 미북관계로만 바라보고 있다. 일종의 "코리아 패싱"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하고 미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국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역 파트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미국인을 만나고 있다.
―강연을 하시며 받았던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한국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과연 한국이 미국의 핵심이익인가?"라는 질문이다. 첫번째 질문에서 만약 실제로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한국의 선택권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서울이 위험하다"고 하면 이기적으로 보이고, "전쟁은 안된다"고 하면 겁쟁이로 보이며, "동맹이 깨져도 좋으니 전쟁은 안된다"고 하는 것도 본심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미국이 군사적인 행동을 하지말아야 하는 이유는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설명해야 한다. 또한 '한국이 미국의 핵심 이익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의 횟수보다 내심 이런 생각을 하는 미국인들이 있다는 것이 염려스럽다.
―미국이 미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물론이다. 미국인이 미국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한국을 저버리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미국 사람들이 깊이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론과 논리만으로는 부족하고 미국인들의 가슴을 두드려서 열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 나라의 운명을 남에 나라에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 군사적 옵션은 전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어 ◆
―실제 미북간 군사 충돌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빨리 한미·한중·북미·북중·북러 등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국가들이 서둘러 접촉해야 한다. 정상간 만남도 필요하다면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정치행태가 일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는 측면도 있다. 즉,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재판단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일단 그 효과를 본 만큼 너무 말만 앞서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대국다운 품위있는 언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의견을 듣고 협의하면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장애물이 많아 걱정이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해서 한반도의 긴장을 낮춰야 한다.
―적극적인 외교를 말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선 '군사적 옵션'이란 떨어진 적이 없다.
▷군사적 옵션은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을 막을 수 없다. 군사적 옵션 보다는 현 대북 제재 방안을 지켜보자고 말하고 싶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앞으로 50년이든 100년이든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지속 될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만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북한의 핵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모여서 북한에 대한 견해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3일 템플대학교에서 열린 전인범 전 사령관 강연은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 = 전인범 전 사령관 페이스북]
―'안보 불감증'이란 이야기도 나오지만 한국 내에서 실제로 제2차 한국전쟁 가능성을 염려하는 시민들이 많다. 한국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
▷걱정은 많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할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일상생활에 충실하고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지자체를 비롯한 비상대비 유관 기관들은 재난재해 대비차원에서 광범위한 준비를 해야 하며 이에 대한 국민적 교육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새롭게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 군이 부족하고 개선할 부분이 많아 염치가 없지만 지금은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무한책임으로 훈련이 어렵다. 안보 위기인 만큼 군은 더욱 정진하고 국민 여러분은 군을 격려해 주셨으면 한다. 이번 위기를 넘기면 또 한번의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결하는 모습으로 북한의 위협을 극복하고 우방에게도 떳떳한 모습을 보일 때라고 생각한다.
■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1983년 10월 북한 아웅산 폭탄 테러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의 부관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갇힌 상사를 구했다.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같은 해에 육군사관학교(37기)에 입학했다. 박 씨와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는 전 사령관의 어머니는 고 육영수 여사의 통역을 맡았던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 후보(사회당) 홍숙자 여사다. 전 사령관은 초등학교 때 유엔 대표부로 발령받은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서 살았다. 영어에 능통하고 전략에 밝아 국방부 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혔다. 2008년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추진단장을 시작으로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차장, 부참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를 역임한 뒤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했다. 작년 그의 전역식엔 주한미군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전 사령관은 제대 후 '후일담'으로 더욱 유명해진 인사다. 제대를 앞둔 병사에게 먼저 경례를 한 장군으로, 부대에 국회의원이 와도 "오시든지 마시든지 평소대로 하라"는 지시로 싸울 때는 제대로 싸워야 한다는 원칙으로 후배들의 신망을 얻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아내 심화진 전 성신여대 총장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며 자진 하차했다. 전 사령관은 작년 10월부터 1년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연수 틈틈이 미국 전역을 다니며 평범한 미국인들은 물론 학자와 변호사 등 엘리트 계층을 만나 한반도의 긴장 상황이 한국과 미국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하며 제2의 한국전쟁을 막기위해 발로 뛰고 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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