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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이승엽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 “오늘 정말 행복했다”
입력 2017-10-03 22:41 
이승엽에게 2017년 10월 3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야구선수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진(대구)=천정환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대구) 이상철 기자] ‘전설 이승엽(41)은 은퇴식 중 몇 차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1시간여 은퇴식을 마친 뒤 그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내일부터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지, 야구선수로서 행복했던 삶을 산 것에 감사해했다.
이승엽은 3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은퇴경기 및 은퇴식을 치렀다. 홈런 2방을 날리며 현역 마지막 경기를 화려하게 마친 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마련한 성대한 은퇴식을 가졌다. 그리고 3루 더그아웃으로 온 그는 취재진에 둘러싸였다. 선수 이승엽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였다.
-언제 가장 눈물이 나던가.
(은퇴식 시작과 함께 이승엽 재단 출연금을 전달하러 단상에 올라오신)이수빈 구단주를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6년 전)윗선에서 결재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돌아올 수 없지 않았는가. 당시 김인 사장님, 류중일 감독님께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두 분 다 감사하다. (그 덕분에)6년간 더 뛸 수 있었다.
-은퇴식 영상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영상은.
(가벼운 탄식과 함께)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본인 건강을 챙기시지 않으셨다. 야구를 하는 막내아들의 뒷바라지에 집중하느라 건강을 잃을 줄도 모르셨다. 그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내가 못 보살펴 드려 일찍 생을 마감하신 것 같다. 한동안 어머니라는 단어도 잊고 살았다. 예전 모습(게릴라 특별영상)을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 내가 성숙한 아들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계셨을 것이다. 후회가 들고 가슴에 맺힌다.

-유니폼을 반납했을 때 심정은.
‘이제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에서만 15시즌을 뛰었다. 팀에 도움이 되기도 했으나 해가 된 적도 있었다. 내가 100%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선수가 있다면, 뒤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한다.
-은퇴경기를 화려하게 마쳤는데.
오늘 아버지, 아내, 두 아들이 야구장을 방문했다. 2만4000명의 관중도 찾으셨다. 그 가운데 송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사실 홈런을 2개나 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경기 전 타격 훈련을 하는데 안타 하나만 쳐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지난 주 쉬면서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 배트가 잘 돌더라. 일요일 경기(1일 잠실 LG전)가 도움이 됐다.
이승엽에게 2017년 10월 3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야구선수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진(대구)=천정환 기자

-오늘 활약으로 야구팬의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다. 은퇴시기를 잘 잡은 것 같다. 물론 아쉽다. ‘야구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아쉬움보다 ‘더 이상 야구를 못한다는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떠난다. 그러나 삼성에는 큰일을 해줘야 할 선수가 많다. 다들 책임감을 느끼기 바란다. 응집력을 발휘해 2년간 망가진 팀을 후배들이 되돌려주기를 바란다. 오늘 시즌 마지막 경기를 통해 내년 삼성에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디에 있든지, 한국야구와 삼성을 응원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다들 진심으로 아쉬워할 텐데.
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수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일일이 호명하지 못하나 모든 지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2년 연속 9위를 했다. 선참으로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야구를 한 뒤 힘든 적도 많았는데 행복한 시절이 더 많았다. 야구선수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프로생활을 삼성에서 시작하고 마무리 해 영광이다.
-지금껏 야구선수 이승엽에게 최고의 선택은.
야구를 시작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사실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심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려 시작했다. 아마 그때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평생 야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껏 모든 진로는 내 의지로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내 선택이 맞은 것 같다. 은퇴도 아쉽기도 하나 개인적으로 잘 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이 상황에서 후배들을 위해 떠나주는 게 옳다.
-은퇴식이 끝날 무렵 팬이 응원가를 불렀는데.
마지막 함성이다. (내 응원가를)누가 만드셨는지 정말 잘 만드신 것 같다. 내가 언제 또 이 같은 함성을 받겠는가. 야구선수로서 많은 걸 누렸다. 받았다. 잊지 못할 순간이 많았는데, 오늘 은퇴식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이승엽에게 2017년 10월 3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야구선수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진(대구)=천정환 기자
-국민타자로서의 삶이 힘들었을 텐데.
정말 힘들었다. 유명인으로 산다는 게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했다. ‘국민타자라는 수식어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 않았나. ‘국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흔치 않다. 늘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기분 좋을 때도 있다. 이 때문에 내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졌다.
-36번이 영구결번 됐다.
솔직히 프로 입문할 때만 해도 36번을 싫어했다. 계약이 늦어 내가 등번호를 선택할 있는 것이 2개 밖에 없었다. 그래서 36번을 골랐다. 1,2시즌을 마친 뒤 등번호 변경을 고민했으나 선배들이 내가 희망하는 등번호(야구를 시작할 때 사용했던 27번)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최우수선수(MVP)가 된 뒤 36번이 내게 맞는 번호라고 여겼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내 은퇴식이라고 다들 36번이 새겨진 특별 유니폼을 입었다. 후배들이 배트, 장갑 등을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올까.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오늘 같은 날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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