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르포] `추석 대목` 앞둔 인삼 공장…"6년 성적표 받는 날"
입력 2017-09-29 16:50  | 수정 2017-09-29 20:26
26일 경기도 이천 청산인삼농원에서는 수확기를 맞아 인삼 캐기가 한창이었다. 트랙터 3~4대와 인부 20여명이 6년근 인삼을 수확하는 모습. [사진 = 김규리 기자]


"아니 그건 썩삼이고, 이게 원삼이지." "원삼은 포대에 넣지 말고 상자에 넣어야지!" 기자가 분류하는 삼을 볼 때마다 작업자들이 혀를 찼다. 삼 분류를 돕겠다며 호기롭게 자리에 앉았지만, 곧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 "삼 수확, 6년만에 받아든 성적표"
지난 26일 경기 이천에 위치한 2만9752m² 규모의 청산인삼농원. 농원 입구에 도착해 다시 차를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10여분 더 들어가야 산자락에 위치한 인삼밭에 도착했다. 인삼밭 입구에 '주의 고압전기'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고가의 인삼을 노리는 도둑이 있어 설치한 것이다. 인삼 수확 시기가 되면 임시 컨테이너를 두고 직원들이 숙식을 하며 밭을 살핀다. 대형견도 돌아다니며 밭을 지켰다.
고압전기가 흐르는 입구를 지나자 굉음의 트랙터 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마지막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이날 최고 기온은 29도에 달했지만, 더위가 무색하게 팔 토시와 마스크로 무장한 유근무 청산인삼농원 대표와 20여명의 작업자들은 인삼 캐기에 몰두했다. 명절 대목을 앞둔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가 인삼 수확철이기 때문이다.

상자에 담긴 인삼은 공장으로 향하기 전 다시 한 번 분류 작업을 거친다. 밭 입구 근처에 자리잡은 삼 분류 작업자들은 1차로 인삼으로 인정받지 못한 삼(파삼) 중 원삼을 찾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파삼 중 썩삼(부러진 삼, 쪼개진 삼, 썩은 삼 등 원삼 규격에 맞지 않는 삼)을 골라낸다. 함께 둘러 않은 기자가 상자 안에서 크기도 크고 외양도 멀쩡해 보이는 삼을 집어들어 자신있게 작업자에게 내보였지만 곧바로 "그건 썩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야 원삼 하나를 찾아냈지만 그마저도 썩삼을 담는 상자에 실수로 넣었다가 '등짝'을 맞을 뻔 했다.
작업자들의 '매의 눈'은 삼과 삼이 담긴 상자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상자에 붙은 바코드에는 생산 지역과 관리자 정보가 담겨 있다. 생산부터 최종 작업까지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인삼은 6년 동안 자연, 관리, 기간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병충해 등을 입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없다"며 "6년만에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라고 소외를 전했다.
인삼은 6년이 지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뿐더러 6년근 인삼이 가장 영양분이 많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인삼을 키울 때 1~4년은 일반 농가에서도 쉽게 키우지만 5년근, 6년 근을 키우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운이 따라줘야 한다"며 "고도의 기술력으로 6년 동안 관리하는 것이기에 수확철에는 농가의 전 직원과 인삼공사 관계자 모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도별 인삼 성장과정. [사진 제공 = KGC인삼공사]
◆ 118년 고려삼 제조 노하우가 그대로
썩삼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친 이 수삼(밭에서 캐낸 말리지 않은 삼)들은 홍삼이 되기 위해 공장으로 옮겨진다.
인삼은 충남 부여에 있는 KGC인삼공사 고려인삼창으로 이동했다. 이 공장 크기는 7만2727㎡로 홍삼제조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약 300개의 홍삼 제품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KGC인삼공사는 연간 9000여t의 인삼을 계약재배 농가를 통해 수확한다. 한 해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부여공장은 매년 약 9600만세트의 홍삼 제품을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한다. 이는 생산량 기준 1900여t에 달하는 양으로, 이곳에서 만드는 올 추석 선물세트만 약 35만세트다.
명절을 앞둔 고려인삼창은 24시간 풀가동에 들어간다. 평소 800여명이 근무하지만 이 시기에는 200명을 증원해 약 1000명이 업무를 이어간다. 선물세트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인데다 홍삼의 원료가 되는 갓 수확한 6년근 인삼이 공장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일 년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하기 위해 7~8월부터 준비한다"고 말했다.
홍삼 제조과정도 단계별 시스템으로 나뉜다. ▲세삼(인삼 세척) ▲증삼(인삼을 찌는 과정) ▲자연건조(태양광과 자연풍으로 삼을 말리는 과정) ▲정형(형태를 다듬는 과정) ▲선별(뿌리삼이나 홍삼가공제품으로 쓰이는 재료를 고르는 과정)을 거쳐 홍삼으로 완성된다.
세척실에서는 강한 수압의 호스로 인삼에 묻은 흙을 제거하고, 초음파 세척기를 이용해 다시 한 번 잔여물을 없앤다. 잔뿌리를 자른 뒤 인삼 길이와 굵기에 따라 대편, 중편, 소편으로 나눈다.
직원들이 특수 책상에 앉아 증삼과정을 거친 홍삼을 ▲천삼 ▲지삼 ▲양삼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다. [사진 제공 = KGC인삼공사]
이 작업은 증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인삼의 굵기에 따라 온도, 시간, 압력을 달리해 수증기로 찌기 때문이다. 홍삼제조업체별로 노하우가 나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KGC인삼공사는 118년 동안 이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총 6대의 증삼기가 쉬지 않고 인삼을 찌면 옥상에 마련된 특수 시설에서 자연 건조한다. 태양광과 자연풍을 통해 15~20일 동안 건조하면 최적의 수분 상태인 14% 미만의 홍삼이 완성된다.
붉고 단단한 홍삼은 이후 정형과 습점압착(완성된 홍삼에 습도를 가해 말랑하게 만든 다음 압착하는 과정)으로 넘어가고, 포장을 거쳐 각 점포로 옮겨진다.
공장 관계자는 "완성된 홍삼도 모양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이를 분류하는 작업은 경력 25년 이상의 전문가만 할 수 있다"며 "등급에 따라 홍삼의 가격도 천지차다. 제일 최상급의 홍삼은 천삼십지로 가격은 620만원 정도"라고 강조했다.
[부여 =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 김동현 기자 / 윤슬기 기자, 영상 = 윤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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