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백두산 새 관찰기
입력 2017-09-22 11:37 
백두산 새 관찰기

멸종위기의 새 '호사비오리'는 남·북한을 오가며 산다. 고향은 백두산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 남한에 날아와 살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으로 간다.
건축가 박웅은 이 사실에 매료돼 새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호사비오리는 천연 기념물 제448호, 멸종위기동물 2급. 새 이름 중 '호사(豪奢)'는 화려한 생김새에서 비롯됐다. 머리의 긴 댕기와 선명한 붉은색 부리, 옆구리의 용을 닮은 비늘 무늬가 특징이다. 제3기 빙하 기후에서 살아남았으며 현재 지구상에 100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천만 년 이상을 살아왔으나 지금은 인간에게 밀려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다.
이 새는 1993년 철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박웅은 1995년 백두산을 오른다. 하지만 호사비오리가 어디에 번식하는지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2010년에는 백두산을 오르며 인연을 맺었던 한족 사준해 사장이 호사비오리 보호지구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 사장은 백두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 이도백하 인근 댐에 물을 막아 작은 호수를 만들고 호사비오리가 둥지를 트는 나무 그루 근처에 천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호사비오리는 매년 4~5월경 이도백하로 찾아와 번식을 한다. 5월 중순에서 말경, 호사비오리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해 둥지를 떠나기까지는 채 이틀이 되지 않는다. 박웅은 일 년 중 그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백두산을 찾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햇수로 꼬박 6년째, 박웅은 다시 이도백하를 찾았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백두산에 올랐지만 강물은 불어나 호사비오리가 있는 건너편까지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호사비오리의 새끼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새끼가 둥지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 강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심정은 초조했다.
마침내 호사비오리 둥지 근처까지 다가가 은신 텐트에 몸을 숨기고 관찰할 수 있게 됐을 때, 어미는 텐트 속의 사람을 의식한 듯 몹시 경계하며 푸드덕거렸다. 어미의 뒤로는 둥지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새끼가 보였다. 테니스공만 한 작은 새끼는 너무 작고, 날개도 다 자라지 않았다. 그런 새끼 앞에서 어미는 마치 뛰어내리는 시범을 보이듯 땅바닥을 향해 곧장 떨어져내린다. 땅바닥에 내려선 어미는 새끼를 부르듯 목청을 높여 꽥꽥거린다. 어미를 향해 대답이라도 하듯 삑삑 소리를 내던 새끼는, 어느 순간 둥지 밖으로 훌쩍 몸을 내던진다. 호사비오리 새끼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박웅은 6년간 기다림과 만남을 '백두산 새 관찰기'로 펴냈다. 그는 "30여년 넘게 야생 새 사진을 찍어오면서 나름의 법칙이 있는데, 새들의 존엄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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