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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등 코스닥 엑소더스…연기금 없인 스타트업 못살린다
입력 2017-09-18 17:49  | 수정 2017-09-18 20:05
18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시세표를 보고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나란히 사흘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코스피는 2410선을 돌파했다. [김호영 기자]
◆ 코스닥시장 키운다 ◆
18일 정부가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금융정책의 주요 화두로 꺼내들었다. 코스닥시장이 벤처기업 육성 창구로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네이버, LG유플러스, 카카오 등 코스닥시장에서 대들보 역할을 했던 정보기술(IT) 핵심 기업들이 줄줄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으로 떠났다. 코스닥 대장주이자 국내 바이오산업의 선도기업인 셀트리온도 오는 29일 개최를 앞둔 임시 주주총회에서 코스피로의 이전 상장을 결의할 가능성이 높다.
유망 코스닥 기업의 경영진이나 주주들이 코스피로 이전을 선택하는 이유는 시장 내 자금 수급 요인이 핵심으로 꼽힌다. 현재 코스닥시장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처럼 안정적인 투자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중점 경제정책으로 삼은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코스닥시장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은 총 15곳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모바일 대표 기업, 국내 3대 통신기업인 LG유플러스, 국내 1위 여행사 하나투어, 국내 2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 온라인 1위 증권사 키움증권 등이 줄줄이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했다.
코스닥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코스피로 떠나는 이유는 코스닥시장에서는 안정적인 투자자금 기반이 취약해 주가가 제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 15곳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이전 상장 이후 평균 112% 증가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 8곳의 주가를 보면 1년 후 주가가 평균 28% 올랐고,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이전이 주가와 수급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모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렇다면 코스닥 주주나 경영진이 지적하는 외국인·기관투자가의 코스닥 외면은 과연 얼마나 심각할까. 매일경제가 거래소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지난 15일까지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코스닥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7.8%로 절대적이다. 외국인은 7.3%, 기관은 4.9%에 그쳤다. 일각에서 코스닥시장을 놓고 "개미들의 투기판"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외국인과 기관 비중이 각각 31.5%, 22.1%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피와 크게 대비된다.
코스닥 기업들의 수급에 대한 불만은 연기금의 코스닥 홀대론으로 이어진다. 국회와 금융투자업계 분석을 근거로 지난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잔액 125조원을 시장별로 나눠 보면 코스피가 120조원, 코스닥은 고작 5조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피 투자 규모가 코스닥보다 20배 이상 많은 셈이다. 코스피 전체 시총이 1500조원, 코스닥 전체 시총이 200조원 규모로 7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에 비하면 연기금의 코스닥 외면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가 적은 것은 안정성을 이유로 코스피 대형주에 직접 투자하거나 대형주 지수인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투자를 점점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덱스 상품인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 유가증권시장은 코스피200지수만 따져도 추종 자금 규모가 10조원 이상인 반면, 코스닥시장은 코스닥지수와 코스닥150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모두 더해도 4000억원에 불과하다.
거래소는 유망 기업들의 잇단 코스닥 엑소더스 문제 해결 방안으로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종목 300~400개를 섞어 담는 새로운 통합지수 개발에 착수했다. KRX100, KTOP30 등 기존 통합지수는 코스닥 종목의 비중이 낮아 관련 상품 개발과 투자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KRX100에 포함된 코스닥 종목은 8개, KTOP30은 카카오가 빠지면서 이제 셀트리온 하나만 남은 상태다. 새 지수는 2014년 1월 일본이 도입한 'JPX닛케이400지수'를 벤치마킹할 예정이다. JPX닛케이400지수는 도쿄거래소(JPX)와 닛케이신문이 공동으로 개발한 지수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 400곳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도쿄거래소 1부 시장 종목뿐만 아니라 2부 시장인 '마더스'나 오사카거래소의 2부 시장인 '자스닥' 상장 종목도 대거 포함된다. 국내의 경우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현재 코스피 상장 종목이 260개사, 코스닥 상장 종목이 70개사 정도로 추려진다. 이승범 거래소 인덱스사업부장은 "단순히 기업의 시가총액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재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지수가 자리 잡을지는 연기금의 참여가 관건이다. 윤주영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코스닥150레버리지 ETF와 같은 코스닥 인덱스 투자 상품이 자생적으로 조금씩 커지고 있기는 하다"면서 "다만 만약 정부가 정책적인 의지를 가지고 코스닥을 수급 측면에서 지원하려면 일본 정부가 JPX닛케이400지수를 연기금의 벤치마크(성과 비교지표)로 정하고 그에 기반한 자금을 집행하도록 만든 것처럼, 우리도 연기금이 윤활유 역할을 하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스닥 활성화가 벤처 창업과 일자리 창출이란 정책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구재상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대표는 "미국 대학생들이 나스닥 상장이라는 목표를 갖고 꿈과 희망을 위해 벤처 창업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우리도 젊은 학생들이 코스닥 상장이라는 목표를 갖고 스스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같은 자본시장 생태계를 고려한 측면이 크다. 실제로 코스닥 상장 기업들은 상장 직후 채용을 10% 정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코스닥시장에서 신규 상장한 기업들(스팩, 상장폐지법인 제외)은 상장 직전 종업원 수가 평균 146.6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상장 시점을 기준으로 그해 말 종업원 수를 재집계해 보니 평균 160.2명으로 나타났다. 코스닥 상장 첫해에 고용을 9.3%나 늘린 셈이다.
[한예경 기자 / 최재원 기자 / 이용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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