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헤드스페이스
입력 2017-09-15 11:02 
헤드스페이스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시에 인구가 밀집하면서 주택난이 발생했다. 시는 3000여가구를 수용하는 13층 규모 공공 주택 33채를 지었다. 그러나 건물들 사이 공간이 문제였다. 입주민들은 내 집만 신경쓸 뿐, 공동 공간에 주인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방치된 이 곳은 결국 범죄의 소굴로 전락하게 됐다. 강력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완공된지 17년만에 아파트 단지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1983년 완공된 영국 런던 북부 메이든 레인 개발 단지 역시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1000여명이 입주한 이 단지에는 놀이터와 마을회관, 테니스 코트, 상점, 보행로, 공공광장 등이 들어섰다. 하지만 거주민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완공된지 단 2년 만에 초라한 모습으로 방치됐다. 지역 의회에서 관리를 소홀히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과잉계획이었다. 건축가들이 입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마음대로 공공 장소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두 실패 사례에서 드러나듯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어야 한다. 잘못 설계된 빌딩은 입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깰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해악을 미친다.
영국 정신과의사이자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폴 키드웰의 저서 '헤드스페이스'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강조한다. 헤드스페이스란 머리 위 어느 정도 공간이란 뜻으로 편안한 마음을 얻는데 필요하다. 철근과 콘크리트 상자인 빌딩에도 영혼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물의 미적 가치보다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완충제 역할이 필요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생각과 감정, 행동의 근간을 뒤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 직장인들은 많게는 하루 9시간 이상 빌딩 속에서 일을 한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다보니 숨이 막힐 때도 있다. 계절도 잘 못 느낀다. 냉방 시스템이 가동하는 여름에는 춥고, 난방 시스템이 가동되는 겨울에는 덥고 건조한다.
사무 환경은 업무 능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 뿐만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다. 영국 샐포드대학에 근무하는 피터 배릿 박사는 교실에 있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들이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최대 17%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디자인 요소들에는 실내 대기의 질, 주변으로부터 들어오는 빛, 자극적인 요소의 유무, 시각적 사물의 존재 여부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도시 건축물과 공간이 어떤 심리학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면밀히 파헤친다.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15년 동안 직접 관찰하고 조사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집과 이웃 환경, 공공 공간과 휴식 공간, 학교, 직장, 병원 등을 훑으며 도시 전체를 분석한다.
결국 그의 해결책은 자연을 품은 빌딩이다. 열대 정원에 거대한 환기구를 품은 싱가포르 배독단지 고층 주택, 베란다에 나무가 가득한 밀라노 수직숲 빌딩 '보스코 베르티칼레' 등을 거론했다. 구글 더블린 캠퍼스 역시 사무실의 소음공해를 차단하기 위해 실내에 식물과 부드러운 가구 등을 배치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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