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진단검사, 정밀의학에 필수…발전사 한 눈에 볼 전시관 개관"
입력 2017-09-11 16:33  | 수정 2017-09-12 09:16
차경환 성현메디텍 대표. [사진 = 한경우 기자]

집안 사정 때문에 고졸 학력으로 의료기기 유통업에 뛰어들어 37년동안 한 우물만 판 사내가 있다. 그는 빠르게 재산을 일구기보다 의학의 발전 과정을 알아가고 그 증거를 모으는 데 더 흥미를 느껴 진단검사의학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물건과 서적을 모았다. 이것들을 한 데 모아 지난달 국내 최초로 진단검사의학 역사 전시관을 만들었다. 차경환(58) 성현메디텍 대표의 이야기다.
11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성현메디텍 사무실에서 만난 차 대표는 서울·경기 지역의 대형병원에 사람 몸 속 미생물의 상태를 검사하는 염색계 진단기기와 그 소모품을 공급하고 있다. 올해 연간 매출 목표는 50억원이다. 회사 규모가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한 데도 역사 전시관을 연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좋아서 모아온 물건들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변검사용 원심분리기, 미군 의무대를 통해 들어온 진단검사의학 교과서, 서양에서 진단검사의학이 구축되던 시기에 사용하던 현미경 등이 진열돼 있다. 대부분 지난 2002년 차 대표가 성현메디텍을 창업한 뒤 사비를 털어 구입하거나 진단검사의학계 원로들에게 기증받은 것들이다.
진단검사의학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물건과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진단검사의학회, 임상병리사협회에서 전시회 요청도 들어온다고 한다. 보통 각종 의사회의 학회에 부스를 차리는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은 행사 주최측에 부스 대여료를 내고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성현메디텍은 지원을 받고 전시품을 진열한다고 차 대표는 강조했다.
성현메디텍의 진단기기 역사 전시관 전경. 진단검사의학이 시작된 19세기 후반에 사용하던 장비를 포함해 모두 5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사진 = 한경우 기자]
"처음 전시품들을 사들일 때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죠. 사업하는 사람이 회사를 키우기보다 당시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는 물건을 사 모으는 데 돈을 썼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일을 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나서지 않은 사람들이 질투하기도 했어요."
차 대표가 회사 경영을 내팽개치고 골동품 수집에만 나선 건 아니다. 성현메디텍은 세계 선두권 미생물 진단기기 제조업체인 미국 ELI테크그룹의 서울·경기 지역 총판이다. 한국 총판을 맡은 수입사와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맡은 지역의 대형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제품을 공급하고 사후 서비스를 한다. 한 번 진단기기를 공급하고 나면 사후서비스를 통해 소모품을 계속 공급하기 때문에 안정적 수익을 낸다.
위기도 있었다. 차 대표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가 창궐했을 때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가 회사의 가장 큰 위기였다고 회상했다.
진단기기업계는 신종플루 사태를 기회로 받아들였다고 차 대표는 전했다. 바이러스 연구에 국가적 지원이 쏟아지면서 주문이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플루 문제가 해결된 뒤 다시 수요가 줄어들면서 많은 재고를 확보해둔 업체들은 위기에 몰렸다. 차 대표는 "당시 회사 재무 여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신종플루 관련 상품을 매입해 위기를 피했다"며 "3개 회사는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망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때는 2~3개월동안 주문이 끊겼다고 한다. 차 대표는 일이 없는 동안 직원들에 대한 교육 투자와 함께 회사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의학 연구용 진단기기 유통회사는 사용자들의 사후관리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연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검사의학은 지금까지 학문이 가진 가치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공의들이 임상현장에서 환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할 때가 많아서다. 하지만 차 대표는 정밀의료가 확산되면 진단검사의학의 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의료진이 환자 개개인별로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전에 환자의 특성을 알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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