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강남 큰손들까지 투자나선 사모채
입력 2017-09-08 16:07  | 수정 2017-09-08 17:18
"국공채와 달리 만기가 2~3년으로 비교적 짧은 데다 3개월마다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옵니다. 최소 거래금액이 없기 때문에 단돈 1만원으로도 투자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 바로 회사채입니다."
지난 4월 한 증권사 지점을 찾은 이 모씨는 프라이빗뱅커(PB)에게 설명을 듣고 고민 끝에 SK해운 회사채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를 밑돌고 있는 가운데 5%대 확정수익을 얻을 수 있고 SK해운이 기업분할 후 재무구조가 개선됐다는 말에 결심을 굳혔다.
회사채는 주식보다 안전하면서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재테크 투자 수단으로 꼽혀 왔는데 과거 웅진과 한진해운 사태 등으로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다. 하지만 최근 우수한 신용등급에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사모채를 속속 시장에 선보이면서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여기에 올해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기업들이 잇달아 사모채 발행액을 늘리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사모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파는 공모채와 달리 소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이 직접 발행하는 채권이다. 금융감독원에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모청약을 진행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6일까지 사모채 발행액은 4조4457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2942억원) 대비 93.8%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공모채 발행이 어려웠던 해운과 건설, 항공업체뿐만 아니라 유통, 제조업체들까지 사모채 시장에서 뛰어들면서 업종 또한 다양해졌다. 여기에 대기업 계열사들까지 사모채 발행에 동참하며 사모채 시장이 비우량 회사채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있다.
한 증권사 PB는 "올 초부터 서울 강남 지역에서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회사채에 직접 투자하는 사모펀드들이 판매되고 있다"며 "연 4% 중반에서 5%대 이자를 지급하는 회사채들이 주로 시장에 나오고 있는데 발행 건별로 리스크가 상이하다는 점을 감안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채를 매입하는 직접투자뿐만 아니라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도 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2012년 2조5300억원에 머물렀던 하이일드펀드 설정액이 5년 만에 두 배가 넘는 5조8734억원으로 급증했다. 하이일드펀드는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에 주로 투자하며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대신 채무불이행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 하이일드펀드 투자자금이 사모채 시장에 유입되면서 기업들의 사모채 발행이 더욱 늘어날 수 있었던 셈이다.
우현일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상무는 "회사채는 기본 시장금리에 발행 기관의 신용도에 따라 가산금리가 붙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며 "저금리 기조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개인투자자들도 고수익을 찾아서 회사채와 주가연계증권(ELS), 브라질 국채, 해외 부동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수요와 더불어 국내 기업들이 사모채를 잇달아 발행하면서 사모채 시장이 급성장했다. 중국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후폭풍을 겪고 있는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올해 들어 각각 총 25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했다. 최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현대로보틱스도 설립 후 첫 회사채를 사모로 발행했고 그동안 무차입 경영원칙을 표방해오던 삼성중공업은 네 차례에 걸쳐 사모채 142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앞으로도 사모채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늘어나고 있고 초대형 투자은행(IB) 출범을 계기로 일부 증권사가 사모채를 사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행 기업 입장에서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사모채 발행을 더욱 늘릴 전망이다.
박성원 KB증권 기업금융본부장은 "공모채와 달리 사모채는 발행의 신속성, 비용 최소화, 투자자에 따른 발행 시점 선택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