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성은의 썸 무비] 관객이 없으면 영화도 없다.
입력 2017-09-08 11:04 

'평점 테러'의 공포로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특정 영화에 고의적으로 악평과 최하점을 줌으로써 평점(대개는 별점)을 떨어뜨리는 평점 테러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해어화'와 '쎄시봉'은 주연배우의 가족이 군에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공격을 받았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감독이 SNS에 올린 저속한 발언들이 개봉 직후 도마에 오르면서 보이콧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가 연일 기사화 되고 있는 것은 올 여름 극장가의 최대 화제작이었던 '군함도'가 평점 테러의 재물이 된 데 이어, 8월 마지막 주 예매율 1위를 달리던 '브이아이피'도 최하점의 뭇매를 맞고 박스오피스에서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점의 태생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영화는 예로부터 입소문에 가장 민감한 장사다. 타인의 의견이 쉽게 관람욕구를 부추기기도, 떨어뜨리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의 평점제는 그 입소문이 내 주변인에서 불특정 다수로 확장된 것이므로 잘 참고하면 꽤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한, 영화계의 입장에서도 많은 관람객들이 특정 장면 등 근거를 제시하며 불쾌감을 표명한다면 '테러'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브이아이피'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관객들의 여성 혐오 관련 비난이 거세지자 자신의 '젠더적 감수성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불한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반성이나 사과가 영화의 심폐 소생술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영화 제작에 참고가 될 만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테러'라는 용어의 주체는 먼저, 영화를 보지도 않고 점수를 매기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이들의 의견을 왜 참고하겠는가 싶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경우, '네티즌'과 '관람객'의 평점이 분리되어 있으나 '네티즌' 중에도 네이버 영화에서 예매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영화를 본 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잠재관객들은 사실상 실제 관람객들의 의견만을 색출할 수 없고, 이 카테고리의 평점도 참고하게 된다. 결국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의 평점까지도 어느 정도 흥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의미다.
또한, 최근 네티즌들이 평점을 주는 방식에도 문제점은 발견된다. 다시 네이버의 경우, 1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부여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언젠가부터 2점부터 9점까지의 비율은 낮아지고 싫으면 1점, 좋으면 10점을 던지는 네티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태도는 평점 테러와 직결된다. '불한당'의 네티즌 평점 중 1점은 41%, '군함도'의 경우는 49%, '브이아이피'는 31%에 달한다.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입체적인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영화 안팎의 문제점만을 극대화시켜 최하점을 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개 전체 평점을 깎아내려 잠재 관객의 호기심과 관람 욕구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영화계의 입장에서는 악의적인 '테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당장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나아가 창작의욕도 잃게 된다.
문제점은 보이는데 구체적인 해결책이 묘연하다. 궁극적으로는 평점에 관한 네티즌들의 의식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으나 시간이 걸릴 터,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영화에 대한 담백한 의견 교환과 정보 공유 등 입소문이라는 평점의 본디 용도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나 소비하는 이들이나 명심할 것. 극장에 관객이 없으면 영화도 없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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