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소설시장이 유난히 뜨거웠다. 4년 만에 돌아온 하루키, 7년 만에 돌아온 김영하와 전통의 일본소설 강자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내로라하는 책도 장기독주는 어림없었고 베스트셀러 1위 1주 천하, 2주 천하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치열한 경쟁의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 하루키도, 히가시노 게이고도 아닌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인터넷서점 예스24의 판매량에 따르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국내외소설을 통틀어 1위에 올랐다. 올해 소설시장은 가히 김지영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출간되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책이었다. 그러다 때마침 국내에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 열풍'과 금태섭 의원의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선물, 노회찬 의원의 문재인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선물 등으로 회자되면서 기록적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순항은 책 자체가 지닌 힘으로 인해서다. 한국의 씁쓸한 현실을 고발하는 이 책의 메세지는 시대적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고발한 책 답게 주독자층도 30대 여성(29.9%)이었고 독자의 절대다수인 67.4%가 여성이었다. 남성을 포함한 30대의 수치도 49.6%에 달해 젊은 계층의 지지를 받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판매부수는 30만부를 돌파했다.
김영하는 2위에 '오직 두 사람', 5위에 '살인자의 기억법' 두 권이나 상위권에 올리며 저력을 과시했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인기작가인 그는 지난 여름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박식한 입담을 자랑하며 연예인급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때마침 출간된 신작은 곧장 베스트셀러가 됐고 9월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원작소설까지 판매량이 훌쩍 뛰었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오직 두 사람'은 현재까지 17만부가 팔렸다. 종전까지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던 '살인자의 기억법'도 23만부를 돌파해 순항중이다. '오직 두 사람'은 40대 여성이 24.3%로 가장 많이 구매했고, 30대 여성이 25%로 뒤를 이어 여성독자들이 많았다.
올 여름 독자들을 서점으로 끌어모은 자석 역할을 한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는 1권이 3위, 2권이 7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50만부를 출고한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뉜 두터운 분량과 강력한 경쟁작으로 인해 예상 만큼의 독주를 하진 못했다. 이미 판매고가 꺾이기 시작한 상태라 10월 초 노벨문학상 시즌을 재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독자는 이례적으로 남성이 55.2%로 더 많았다. 주독자층도 30대 남성으로 30.2%에 달했고, 30대 여성은 18%에 그쳤다. 30대 독자가 48.3%, 40대 독자는 32.1%로 이들이 주독자층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열린책들) 1·2권은 각각 4위와 8위에 올라 여전한 작가의 인기를 과시했다. 베르베르는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소설이 팔린 작가로 집계됐을 만큼 국내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은 작가다. 이번 신작도 25만부가 출고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작인 '제3인류'는 4년에 걸쳐서 80만부 가량 팔린 바 있다.
6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이 차지했다. 다작으로 유명한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이 책은 2012년 출간이래 5년째 베스트셀러 차트를 지키고 있는 기록적인 책이다. 한 집계에서는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일본소설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게이고의 올 여름 신작인 '위험한 비너스'(현대문학)도 9위에 올라 이름값을 했다. 10위에는 하반기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차트 역주행을 시작한 정유정의 '7년의 밤'이 차지했다. 국내 대표 스릴러 작가의 첫 히트작으로 영화의 성패에 따라 하반기 베스트셀러 등극이 기대되는 소설 중 하나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