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변기 훤히 보이는 男화장실…남자인권은 어디에
입력 2017-08-07 16:32  | 수정 2017-08-08 17:08

올해 가을학기부터 경희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사이몬 패트릭 씨(25·스위스)는 대학내 남자화장실에 갔다가 적잖게 당황했다. 소변을 보던 중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순간 화장실 입구를 지나던 낯선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용변을 보는 모습이 화장실 바깥에서 고스란히 보였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외부에서 소변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설계된 남자화장실 구조는 스위스에선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조금만 눈 돌려도 남성들의 소변보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남자화장실 구조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건 외국인만이 아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소재의 남부지검에서 일하는 A씨는 "1층에 남자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입구 바로 앞에 여성 장애인 화장실이 붙어있다"며 "입장을 바꿔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여성화장실 바로 앞에 남성 장애인 화장실을 붙여놨으면 어떻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남성들이 소변보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조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휴가철을 맞이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한 남성관광객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글이 속속 온라인에 올라오고, 대학에선 남자화장실 구조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7일 경인교육대학교 대나무숲에 따르면 최근 게시판에는 이 대학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3개의 소변기 중 2개가 화장실 밖에서 훤히 보이는 문제로 학생들이 3번째 소변기에만 줄을 서서 이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B씨는 "기본적으로 (가림막) 문이라도 설치를 하거나 화장실 구조를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남자화장실의 외부 노출 문제는 특히 대학과 지하철 역,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중심으로 심각하다. 경희대학교 서울갬프스에선 경영대학과 중앙도서관의 남자화장실 소변기가 외부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문제로 학생들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최근 학생들이 직접 나서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기도 했다. 경희대 학생들이 재학생 86명(남자 40명, 여자 46명)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75명(87.2%)이 "외부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남자화장실 구조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입구가 개방된 남자화장실 구조는 남성들만 불편한 게 아니다. 남자화장실의 외부노출 문제는 지난 2004년 화장실문화연대가 서울 시민 150명(남성 80명, 여성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남녀 공통으로 지적된 바 있다. 당시 남성응답자 중 83%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 중 50%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가림막 설치를 요구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인 95%가 가림막 설치에 동의했다. 여성들도 "누가 용변보고 있는 뒷모습이 보이는게 지나갈때마다 민망할 따름"이라며 개선을 촉구햇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후진적인 구조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차체나 행정당국이 사실상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목소리가 높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는 "신규로 설치되는 화장실의 경우 외부 노출 방지가 중요 고려 사항이지만 기존 화장실에 대해서는 공간 부족과 구조변경에 들어가는 추가예산을 핑계로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남녀 대·소변기를 가릴 것 없이 용변 보는 모습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화장실을 설계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화장실 설계 및 시공 시 화장실 외부에 있는 사람이 화장실 입구에서 일정 반경 이내에선 화장실 내부의 소변기가 보이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남자 화장실은 안에서 별도의 문을 열어야 소변기가 나온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공중화장실 설치기준을 변경하기로 했다. 개정된 기준에 따르면 내년부터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공중화장실의 출입구는 복도나 도로 등을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화장실 내부가 직접 보이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 다만 이미 지어진 화장실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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