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은 가을을 알리는 입추이지만 전국이 폭염 특보와 주의보가 발효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말 남부지방은 섭씨 38도를 웃도는 폭염에 전남 진도에서 밭일을 하던 91세 노인이 숨지는 등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1188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했고 6명이 사망했다. 온열질환(열사병·열탈진·열경련·열실신) 환자는 2014년 556명, 2015년 1056명, 2016년 2125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환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0%가까이 늘었다. 최근 5년간 사망자 58명을 살펴보면 70대 이상 고령자가 절반(29명)을 차지했고, 50대 21%, 40대 17%, 60대 14% 등의 순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폭염에 의한 열사병은 왜 치명적이고 목숨을 앗아갈까?
우리 몸은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면 땀배출을 통해 체내의 열을 70~80%쯤 발산하게 한다. 그러나 땀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체온이 41도 이상 올라가면 의식상실, 경련발작과 같은 중추신경계의 기능장애를 동반한다. 이것이 바로 열사병이다. 일사병은 무더운 날 강한 햇볕에 오랫동안 노출됐을 때 발생하며 두통과 함께 현기증이 나타난다.
혈액 역시 우리 몸이 열을 받으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근처 모세혈관으로 집중된다. 심장은 피부 표면의 순환 혈액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박동이 커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여기에다 장기 및 근육 쪽으로 가는 혈액이 피부쪽으로 몰리면서 심장은 장기나 근육에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이 움직이게 된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과 같이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조심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온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 역시 폭염이 지속되면 인식능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뇌는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열에 매우 취약하다. 뇌 역시 기계처럼 열을 받으면 체온을 조절하는 중추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판단력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금방 흥분하고 화를 낸다. 심할 경우 산소부족으로 이어져 뇌신경 장애가 발생해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있다.
뇌는 작업능률을 100으로 봤을 때 24도만 되어도 83%, 30도에는 63%로 떨어지고 40도 이상에서는 작업이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대표적인 온열질환인 열사병이 뇌손상(지연성 소뇌손상)을 유발해 두통 및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김지수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열사병 환자 진료를 통해 열사병이 발현된 후에 나타나는 장기적 증상과 질환을 분석한 결과, 증상이 경미한 열사병이라도 초기 증상이 회복된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7일 밝혔다. 연구팀은 전정기능 검사를 통해 어지럼증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지연성 소뇌손상'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신경학분야의 저명학술지인 '신경학저널' 최신호에 게재됐다.
김지수 교수는 "열사병 환자가 발생한 경우, 체온을 빠른 시간 내에 떨어뜨려야 심각한 뇌 손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처치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에 더해 정밀한 검사 및 평가를 통해 소뇌의 평형기능에 이상은 없는지, 지연성 뇌손상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열사병으로 인해 뇌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의식수준 저하나 이상행동 및 판단력 저하를 보이거나 심하면 혼수상태로 빠질 수 있다. 특히 소뇌의 기능이상이 제일 먼저 나타날 수 있는데,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거나 손발을 정밀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떨리듯이 움직이는 현상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자는 초기 증상이 회복되더라도 면밀한 경과관찰이 필요하고, 어지럼증이 다시 발생할 경우에는 전문의 진료를 통해 소뇌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사병을 예방하려면 바깥 온도가 매우 높을 때는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신선한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일하고, 일하는 동안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20~30분마다 충분한 물을 마시도록 한다. 무더운 곳에서 일할 경우에는 시작하기 전에 미리 물을 충분히 마셔주며 차와 커피나 술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옷은 땀 흡수가 잘 되는 가볍고 밝은 색의 긴팔 옷을 입고, 햇볕에 나갈 때는 모자나 양산을 쓰는 것이 좋다. 특히 열사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목격했다면, 우선 환자를 그늘로 옮기고 119에 신고해야 한다. 물에 적신 얇은 천을 환자 몸에 덮어주고,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한다. 만약에 의식이 없다면 기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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