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쇼미더머니 시즌6' 2차 경연에서 태도와 실력 논란이 불거졌던 래퍼 디기리의 미방송분 현장이 일주일이 지나서야 공개됐다. 제작진은 편집을 통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으나 과도한 시선 끌기였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4일 방송된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6'에서는 2차 경연을 통과한 참가자들의 일대일 배틀이 이뤄지는 3차 경연이 전파를 탔다. 마크로닷·매니악, 우원재·이그니토, 주노플로·심바자와디, 페노메코·에이솔 등 어느 시즌 때보다 수준 높은 무대에 프로듀서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디기리·피타입 무대는 가장 관심받았다. 디기리는 지난주 방송에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에도 타이거JK 응원을 받고 2차 경연을 통과했다. 이날 방송에서도 피타입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디기리를 손 쉬운 상대로 지목했다. 제작진은 이번에도 프로듀서 참가자 등이 따가운 시선으로 디기리를 바라보는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
디기리는 피타입과의 무대에서 동점을 받은 뒤 재대결 끝에 탈락했다. 활동하던 시기에 비해 빼어난 랩은 아니었지만, 피타입과 1세대 래퍼들의 자존심을 세울 만한 능력을 보여줬다. 2차 경연에서의 실력 논란은 그나마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방송 막판에 지난주에 공개하지 않았던 영상을 전했다. 디기리는 2차 경연을 앞두고 시청자들에게 "병역 비리 문제 때문에 군대를 두 번 다녀왔다. 방송을 쉬어서 국민들에게 사과드릴 시간이 없었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디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화면을 잘라냈던 것이다.
제작진은 디기리의 이 같은 사과를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내보냈다. 디기리는 앞서 자조적으로 '괄약근의 마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분위기에 맞지 않는 행동 때문에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모자른 실력에도 디기리에게 기회를 준 프로듀서 타이거JK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디리기의 모습은 편집에 때문에 일부분만 강조됐다는 게 밝혀졌다. 디기리가 사과하는 영상이 공개된 후 타이거JK가 디기리의 통과를 밀어붙인 이유도 일부분 이해됐다. 디기리는 현역 래퍼들 실력 차이가 났지만, 타이거JK가 디기리에게 랩을 통해 사과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제작진은 '디기리 떡밥'을 던져놓고 홀연히 1회만에 회수했다. 제작진은 1세대 래퍼들이 아직 젊은 래퍼들과 경쟁할 수 있고,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힙합이 발전했다는 드라마를 썼다. 방송의 방향키를 움켜쥔 제작진의 '편집의 묘미'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디기리는 그 사이에 안하무인 래퍼로 낙인 찍혔고, 타이거JK는 고개 숙였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지적됐던 '악마의 편집'이 또 등장한 것이다. 이번에는 두 회에 걸쳐 '디기리'라는 인물을 상반되게 그렸다. 자신의 잘못을 그저 웃어넘기는 래퍼에서 단 1회 만에 방송에서 스스로 사과한 래퍼가 된 것이다. 편집의 권한을 가진 제작진이라도 정도가 지나쳤다.
디기리를 무작정 몰아붙인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편집 방향을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야 했다. 이 정도면 제작진의 '시청자 기만'이라고 할 만하다. 방송에 대한 비판의 기회가 열려있다고 해도, 전달되는 정보 자체가 왜곡된 것이라면 제작진의 잘못이다. 반전의 편집은 90분 분량의 방송 안에서 끝내도 충분하다.
디기리를 앞세워 논란을 만들고, 적절하게 사용한 제작진은 '쇼미더머니'가 논란을 먹고 커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1세대 래퍼들이 랩배틀에 나서고 박수를 받았지만, 제작진이 지나치게 편집의 소재로 삼은 건 그저 웃고 넘어가기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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