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법원이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 구글에 대해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유럽연합(EU)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었다. EU는 글로벌 IT 기업의 법인세 탈루 의혹에 철저하게 단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일랜드에 이어 프랑스도 이를 거부해 EU의 '영(令)'이 서지 않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친(親)기업 드라이브에 열광하고 있는 국민 여론에 법원이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파리행정법원은 12일(현지시간) "구글에게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는 광고 판매 수익은 프랑스 정부가 과세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구글은 유럽에서 파리와 영국 런던 등 여러 도시에 지사를 운영하면서 본부는 법인세율이 12.5%로 가장 낮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두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구글 등 IT기업들이 자국에서 내는 이익을 다른 나라로 빼돌린다고 주장하며 과세를 요구해왔다.
프랑스 법원은 구글이 프랑스에서 한 광고 사업은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구글은 아일랜드에 본부를 두고 있어 프랑스 지사에서 2005~2010년간 사업에 과세한 프랑스 세무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700여명이 고용된 지사가 있지만 독자적인 광고영업 활동을 할 수 없어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간 프랑스 국세청은 구글의 프랑스 지사가 온라인 광고 등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어 이에 대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글의 대변인은 "프랑스 법원은 구글이 국제 표준 세법을 준수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날 판결을 환영했다. 또 "우리는 프랑스의 경제 성장과 디지털 기술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프랑스 당국은 구글 아일랜드 본부가 실제로 프랑스 지사를 관리하는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중심으로 납세 의무를 어기지 않았는지 등을 조사해왔다. 그러나 구글 측은 파리와 런던 등에 있는 지사는 완전한 사업체가 아니며 더블린에 있는 유럽본부의 보조역할을 수행할 뿐이라고 반박해왔다. 프랑스 내 광고 모집 및 수행이 프랑스 지사 단독 판단이 아니라 더블린 본부 책임 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프랑스 세법상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구글 측 입장을 법원이 인용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가 미국 IT 업계에 공세를 가하는 중에 이번 판결은 유럽 각국이 미국 IT 기업에 규제의 칼날을 겨누고 있지만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라조 지적했다. EU는 지난해 애플이 아일랜드에 본사를 운영해 법인세를 탈루했다며 130억 유로(약 16조2130억원)의 세금을 추징키로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당국은 현재까지 이른바 '구글세' 도입과 관련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아일랜드 당국의 대처에 전전긍긍하던 EU는 이번 프랑스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글로벌 IT 기업의 세금 문제에 있어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애플, 페이스북 등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이탈'은 치명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블룸버그는 이번 법원 판결이 친기업 행보를 보이는 마크롱 정부에 탄력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변모시키고, 이를 위해 100억유로(약 13조원)의 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전날 마크롱 정부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탈(脫)런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장원주 기자 / 박의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