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격론 부르는 `위험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왔다
입력 2017-07-13 15:03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41)가 다시 방한했다. 지난해 첫 방한에서 10여개 이상 강연과 인터뷰를 소화했던 그는 이번 방한 일정을 기자회견과 단 한 번의 강연만으로 채웠다. 중국에서 12일 입국해 16일 출국하는 그의 이번 방한 목적은 칠순의 노모와 함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 신(神)이 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지난 5월 낸 신간 '호모 데우스'의 반응이 전작보다 더 뜨겁던 차다. '사피엔스'가 39만부를 돌파한데 이어, '호모 데우스'는 9만5000부가 팔렸다. 방한에 맞춰 2008년 작인 '극한의 경험'도 번역돼 나왔다. 13일 오전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만난 그는 4차 산업혁명, 종교의 미래와 인류의 행복에 관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와 미래를 다뤘으니 '오늘(present)'에 관한 책이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 '호모 데우스'에 지식의 역설이란 표현이 나온다. 어떤 말인가?
▶우리가 지식을 쌓을수록 세계가 더 빨리 변하고, 그 변화로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더 모르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2040~2050년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자녀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혼돈의 상태, 무지의 상태, 변화의 상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정보나 기술보다는 정신적 균형이나 유연성을 기르도록 하는데 더 투자 해야 하지 않을까.
- 기술의 발전이 수십억의 잉여인간 계급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핀란드 등에서 실험중인 기본소득제(재산, 소득등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소득분배 제도)가 대안이 될까?
▶기본소득제는 매우 흥미롭고 잠재력도 많은 실험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AI의 파괴력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섬유산업을 자동화시키는 알고리즘이 발달한다면 AI(인공지능)가 발달한 한국 미국 등은 부자가 되겠지만 싼 노동력에 의지하는 과테말라, 베트남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제는 핀란드 국민이 세금을 더 거둬서 방글라데시의 수백만의 사람을 돕는데 합의를 할 것인가다.
- 성취를 할 때 느끼는 작은 보람이 행복인데, 기술의 끝없는 발전 속에 인간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행복은 인류가 한번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역사상 계속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그 힘을 행복으로 어떻게 바꿀지 답을 찾지 못했다. AI가 인류의 복잡한 문제를 풀고 암도 치료해주겠지만 인간의 행복은 보장되지 않는다. 더 비참해질 수도 있다.
- 책에서 방대한 식견을 보여주는데 독서법이 궁금하다. 또한 명상은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나 또한 전공인 중세 전쟁사를 매우 깊이 공부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어떻게 지배적 체제가 되었나''인류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나'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광범위한 책을 읽어야 했다. 이런 접근법도 위험이 있다. 잘못하면 정보의 바다에 빠져 익사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위빠사나 명상을 하는 이유다. 명상을 통해서 얻은 집중과 정신적 균형이 없다면 '호모 데우스' 같은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다.
-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포유류는 의식과 지능을 문제해결에 같이 사용하지만 AI는 감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로봇과 전쟁을 할거라는 SF영화 속 상상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가능성이 있다. 공장노동자 택시운전사 통역가 기자의 직업을 AI가 대신하기 위해선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수십억명이 일자리를 잃고 정치력을 잃게 될 수 있다.
- 종교라는 건 용도폐기된 사상인데도, 왜 테러리즘을 일으키는가.
▶사실 미국 영국 한국 중국에선 테러보다는 땅콩알러지로 죽는 사람이 더 많고 욕조에서 익사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다. 테러리스트는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해가 되는지 잘 아는 이들이다. 파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면 코끼리의 귀에 들어가면 된다. 이게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테러리스트라는 파리가 미국이라는 코끼리를 미쳐 날뛰게 하면서 중동을 파괴하는 것이다. 테러리스트에게 포로로 잡혀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야한다.
- 이스라엘과 관련된 국내외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민족의 신화나 종교를 믿는 이들은 과학자, 학자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귀머거리처럼 행동한다. 유태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영원불멸의 수도다. 과학자에게 이것은 난센스다. 인류는 20만 년 전 등장했고 유대민족은 3000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이 20만 년 후에도 존재할거라고 믿는 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 4차 산업혁명이란 말에는 실체가 있나?
▶ AI와 생명공학이 합쳐지면 세계 경제 전반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아이디어다. 4차 산업혁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21세기 우리가 처한 큰 위험은 더이상 자본가나 시장경제가 대중을 위할 이유나 동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재자도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교육 의료 보건 복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병사들은 로봇, 드론으로 대체되고 있고 사이버 전쟁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엘리트들은 수백만의 대중을 위한 의료나 복지에 투자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소수 엘리트 자본가의 힘을 통제하는 것은 인류의 중요한 숙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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