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관념소설계 거장 박상륭, 영면하다
입력 2017-07-13 11:30  | 수정 2017-07-13 14:25

문인들이 더 사랑한 소설가. 한국 관념소설계 만신전에 추어올리기에 마땅한 거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자웅을 겨루던 1960년대, 특유의 종교적·신화적 세계관으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박상륭 소설가가 소추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대장암을 앓다 지난 1일 캐다다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40년 전북 장수군 태생이다. 중학시절 이미 500여편의 습작시를 남길 만큼 문학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1961년에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전신인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김동리 밑에서 이문구와 수학했다. 1963년 사상계에 실린 그의 데뷔작은 유다를 내세워 노파 살해와 검열을 통한 구원과정을 다룬 '아갈다마'. 이후 장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록' 등을 내놓으며 일약 한국 문단의 유일무이한 위치에 오른다.
문학비평계 거목 故김현 선생이 '죽음의 한 연구'를 "이광수의 '무정' 이후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의 하나"로 치켜세운 건 유명한 일화다. 후배 문인들도 자주 그런 그에게 경의를 표해왔다. "40년 가까이, 존재의 근원에 맞서 '글쓰기'의 형식으로 치러지고 있는 박상륭의 고투는 가히 영웅적"(시인 김사인) "한 세월이 흐른 뒤 무덤에서 가장 많이 불려나올 소설가"(시인 김정란)
한데, 고인의 작품은 정작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얼리즘과 서사문학 시대에 극도로 난해한, 그리고 사변적인 만연체 문장을 고수하며 '외톨이'를 자처한 것이다. 이른바 훗날 '잡설'이라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다. 다음은 그 유명한 '죽음의 한 연구' 도입부.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생전에 고인은 자신의 글쓰기를 이처럼 설명한 바 있다. "서양에는 긴 문장, 깊이 있는 문장, 복합체 문장들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그런 선배 작가들이 있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짧은 문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에게는 그런 긴 문장을 쓰는 배경이 없었으므로 먼저 긴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해야한다."
1968년 고인은 캐나다로 이민해 종교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며 집필 활동을 병행해왔다. 1998년 귀국해 이때의 경험에 입각한 '평심'과 산문집 '산해기' 등을 출간했고, 1999년 4월 박상륭문학제가 생존작가로는 드물게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며 화제를 모았다.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문학상을 받았으며, 이 밖에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열명길' '소설법' 등을 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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