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실적끝판왕 삼성전자] 호실적 불구 미래전략 못세우는 리더십 부재
입력 2017-07-07 15:10 

"이미 3년전, 5년전 이건희 회장때 결정한 것들입니다. 그 과실을 지금 거두고 있을 뿐이예요"
7일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은 사상 최고 실적 소식에도 무덤덤했다. 사상 초유의 총수부재 상황이 길어지면서 당장 3년뒤, 5년뒤가 불안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세계 제조업체 1위로 기록될만한 영업이익을 과연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건희 회장 와병인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마저 구속된 상황이다. 삼성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며 "여기에 미래 먹거리를 그룹차원에서 고민하면서 대규모 투자 전략을 짰던 미래전략실마저 이젠 없다. 계열사 사장들이 잘 대처하고는 있지만 올해 실적이 우선 순위일 뿐 미래의 중장기전략은 당장의 고민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불안한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반도체는 전통적인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슈퍼사이클의 고점을 찍을 때 선제적으로 3~5년을 내다보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반도체 착시 효과가 사라질 이후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메모리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는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는게 업계의 진단이다. 여기에다 200조원을 투자하겠다며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이 대량 공급에 나선다면 반도체 사이클은 최악의 '다운턴'을 맞을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에 따르면 전세계 D램 시장 매출은 지난해 415억달러에서 올해 553억달러, 내년 578억달러까지 증가한 뒤 2019년에는 534억달러로 비교적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형 인수합병(M&A)는 완전 중단됐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미국의 전장(자동차 전자장치)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새로운 M&A는 단 한건도 없다. 게다가 이미 인수한 기업들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제대로 못내고 있다. 총수 부재사태로 오너십을 갖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나누고 힘을 실어줄 사람이나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삼성전자는 하만을 활용할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대표와 이상훈 사장(CFO)이 하만의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지만, 2015년 12월 신설된 '전장사업팀'은 별도 부문으로 권오현 대표이사가 관장하고 있다. 갤럭시S8 이어폰에 하만의 AKG 브랜드를 사용하고, 상업용 디스플레이에 화상 통화 기능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아직 이렇다할 시너지를 찾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비브랩스도 본궤도에 못오르고 있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무선사업부(IM)와 함께 협업해 빅스비를 내놨지만 삼성전자가 약속한 시간 보다 두달 이상 영어 서비스가 늦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어 서비스까지 늦어지면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1·2위 시장에서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올 가을 갤럭시노트8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실 이건희 삼성 회장 시절에는 미래전략실이 신수종 사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체계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과감한 M&A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통해 삼성의 또다른 변신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총수부재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룹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거나 시너지를 내는 작업이 더디다는 평가다.
선장 부재는 해외 정부와 협력이 필요한 곳에서도 노출된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국내 투자에 대해선 윤곽을 잡았지만 해외 투자를 결정하는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중국 시안의 낸드플래시 증설과 관련해 아직 기본적인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미래전략실 같은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소비자가전이나 스마트폰 같은 세트 부문 부진에도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북미 시장에서의 갤럭시S8 판매 부진과 TV시장에서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 축소 등 향후 삼성전자에 실적에 영향을 끼칠만 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부품 부문도 이에 따른 전망 때문에 투자 계획을 조정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작동한다면 부품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뒤 막대한 세트 수요를 바탕으로 계획을 수정·보완하는 과감한 전략을 펼 수 있었다"며 "삼성전자내 각각의 사업부문이 미래 보단 단기적인 실적에 매달리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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