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요금횡령한 버스기사 해고…기준 부정확해
입력 2017-07-01 15:38  | 수정 2017-07-08 16:05


2013년 1월 진주-전주 노선을 운행하던 시외버스 기사 김모(당시 56세)씨는 현금으로 받은 요금 3천원을 회사에 납입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운전석에 있던 폐쇄회로(CC)TV엔 승객 6명이 찍혔는데 요금은 5명분밖에 회수되지 않자 회사가 진상 파악에 나선 결과였습니다.

사측은 '운송수입금을 착복한 경우 해고한다'는 노사 단체협약 등을 들어 김씨를 해고했습니다. 35년 만에 운전석에서 쫓겨난 그는 "현금을 받은 사실을 깜빡했을 뿐인데 해고는 과도하다"며 불복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김씨가 3천원을 착복한 것은 맞지만, 회사가 그를 복직시키라고 판결했습니다.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1년 후인 2014년 1월 버스 기사 이희진(당시 50세)씨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석대-서울남부터미널 노선을 운행한 뒤 현금 요금 2천400원을 회사에 덜 납입한 게 CCTV를 통해 포착된 것입니다.


그의 회사 역시 기사가 요금을 착복하면 해임하도록 노사합의가 돼 있었습니다. 해고당한 이씨는 "성인-청소년 요금을 착각했던 것일 뿐"이라며 불복 소송을 냈지만, 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습니다.

법원은 "횡령액이 소액이라도 이 사건 횡령행위는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라며 "해고는 정당하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상고했지만 5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습니다. 17년간 다닌 회사로부터 영영 퇴출당한 것입니다.

물론 두 사건은 '디테일'이 조금씩 다릅니다. 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김씨는 3천원을 고의로 착복한 게 맞지만, 계획적 행동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에 해고가 확정된 이씨는 2천400원 중 일부를 현금수납용 봉투가 아닌 운전석 왼편에 따로 보관하는 등 고의성이 좀 더 짙고, 해고 이후 1인 시위 등으로 회사와의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고 법원은 봤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사실상 같은 구조인 두 사건의 결론을 가르는 중대 요소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판사는 "수십 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해고되는 건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며 "그런데도 유사 사건에서 정립된 판례나 기준 없이 오락가락 결론을 낸 것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원은 두 사건을 모두 '심리 불속행'으로 기각했습니다. 법조계에서 '심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판결은 형사 사건을 제외한 대법원 사건에서 2심 판결이 중대한 법령 위반, 판례와 상반된 해석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심리를 아예 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것입니다. 적법한 상고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판단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근거는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심리의 불속행)에 두고 있습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두 사건 모두 '법리적' 쟁점은 없어 법의 해석을 판단하는 대법원이 판시를 낼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선 현재 일반법원 민사부·행정법원 행정부 등으로 흩어진 노동 관련 사건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심리하는 '노동법원'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주장은 노동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더 힘을 받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한국노총과 간담회에서 "노동법률에 전문성이 있으면서도 사회법 원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법관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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