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탈원전의 경제학] 비용 들어도 안전이 제일…전기료는 40% 이상 오를 듯
입력 2017-06-28 16:45  | 수정 2017-06-28 16:48

지난 19일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시작으로 국내 다른 원전들도 설계수명 만료를 앞두고 있다. 현재 수명연장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인 월성 1호기를 포함해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은 모두 11기에 달한다.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원전 또한 모두 11기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인 신고리 4·5·6호기(울산)와 신한울 1·2호기(울진) 등 5기다. 이 중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3기는 이미 공정률이 100%에 가까워 사실상 중단이 불가능하지만 당초 계획된 11기 가운데 8기는 추진 여부가 매우 불투명해졌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 배심원단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만약 시민 배심원단이 '계속 건설'로 결론을 내린다면 문 대통령 임기 내인 각각 2021년과 2022년 완공되겠지만 '건설 중단' 결정을 내리면 영원히 빛을 못 보게 된다. 또 앞으로 건설 예정인 원전은 신한울 3·4호기(울진), 천지 1·2호기(영덕)과 아직 용지가 결정되지 않은 2기 등 모두 6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신한울 3·4호기 설계를 중단했고, 천지 1·2호기도 용지 매입 절차를 보류했다. 아직 착공조차 못 했기 때문에 이들 6기는 조만간 마련될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에너지 공급 확대 정책에 따라 원자력과 석탄화력을 무분별하게 늘렸다는 판단에 따라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현재 30%에서 18%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대신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20%에서 37%, 신재생에너지를 5%에서 2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LNG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발전비용이 상승하고 덩달아 전기요금 인상도 뒤따를 수 밖에 없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공론화'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이 이행될 경우 발전비용이 급증하면서 전기요금이 최소 18%에서 최대 79%까지 오를 수 있다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발전단가를 비교해 보면 원전이 kWh당 68원으로 가장 저렴하고, 석탄화력(74원) LNG(101원) 신재생에너지(157원) 순이다. 원전을 LNG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전기요금은 40% 안팎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에너지 전공 대학교수 230명으로 구성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은 문 대통령 공약 이행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률을 36~40%로 추정했다.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환경에너지팀장을 맡았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공약이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25% 안팎 인상될 것"이라며 "현재 5만5080원인 4인가구 월 전기요금(350kWh 사용 기준)이 1만3770원 정도 오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권도 탈원전·탈석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교수는 "원전이나 석탄 발전에 따른 각종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원전 옹호론자인 황주호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앞으로 추가 원전 건설 및 계속 운전을 하지 않으면 21GW를 대체해야 하는데 LNG로 대체 시 추가 비용은 약 14조원, 전기요금은 25% 상승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대체 시 추가 비용은 약 43조원, 전기요금은 79% 상승할 것"이라며 "전면적인 탈핵이 아닌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적절히 조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독일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13년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00년과 비교할 때 40.7%나 급등했다. 특히 탈원전을 선언하고 전체 원전 설비의 40%를 줄였던 2011년부터 급등세가 두드러졌다. 원자력 발전 대신 돈이 많이 드는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면서 각 가정에 '재생에너지 부과금'을 부과했는데 전체 전기요금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유럽에서 전기요금이 두 번째로 비싼 나라가 됐다.
전기요금 인상은 비단 가정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장 등에서 이용하는 산업용과 일반 가게 등에서 이용하는 상업용(일반용) 전기요금도 크게 뛰면서 기업과 자영업자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2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에너지 공약이 실현될 경우 작년 대비 2030년 전기요금은 산업용이 가구(호)당 1320만7133원 뛰는 것을 비롯해 교육용(782만4064원) 상업용(82만2900원) 가정용(6만2391원) 등 평균 가구(호)당 31만3803원(17.9%)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 유가가 10년 새 가장 낮은 수준임을 고려하면 향후 고유가 시대가 도래할 경우 탈원전에 따른 산업용 전기요금 폭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친환경 에너지 확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맞지만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만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가정용도 인상이 불가피한 만큼 또 다른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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