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위기감 높아진 금융지주의 역습…IB덩치 확 키워 증권사에 `맞불`
입력 2017-06-22 17:50  | 수정 2017-06-22 19:49
한국판 골드만삭스와 같은 초대형 투자은행(IB)을 꿈꾸는 증권사들이 '유사은행업'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자 금융지주사들이 공세적으로 IB 조직을 확 키우는 전략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은행, 금융투자사, 보험사 등 계열사별로 분산돼 있던 IB 인력을 한곳으로 모으는 IB 조직의 물리적 통합은 물론 은행지점 평가에 증권업무 소개 실적을 반영하는 등 IB 영업 확대에 들어갔다.
또 해외 인프라 인수금융에 지주 내 금융사가 함께 뛰어드는 등 과거 단순 은행 중심의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그간 증권사 독무대였던 IB 시장 잠식에 올인한 상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오는 7월 초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가 구축한 기업투자금융(CIB) 조직에 신한생명과 신한캐피탈 IB 파트까지 포함시켜 금융지주 IB 업무를 총괄하도록 할 방침이다.
신한생명과 신한캐피탈에서 IB 업무를 맡고 있는 인력 50여 명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은행·금투 CIB 직원이 근무하는 여의도 신한금투 본사로 출근한다. 이렇게 되면 신한금융지주 CIB 조직은 IB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50여명을 아우르는 거대 IB 전문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홍콩에 있는 신한IB센터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채권발행 주선업무도 확대할 예정이므로 인력을 추가로 채용한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은행 내 IB사업단 인력을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본사로 이동시켜 190명 규모의 그룹 IB 조직을 꾸렸다. 작년 말 은행 IB 부문을 본부에서 한 단계 높은 사업단으로 격상시키고 은행 IB 담당 임원이 금투 IB 임원까지 겸직하는 조직 개편을 시행한 이후 실무 인력의 물리적 통합까지 단행한 것이다.
은행 영업점이 채권 발행과 같은 IB 업무 수요가 있는 기업고객을 발굴해 하나금투에 소개하면 금투가 받은 수수료를 영업점 평가에 반영하는 '그룹IB이익공유제도'도 도입했다.
우리은행은 올 하반기 뉴욕·런던·시드니와 싱가포르 지점에 '글로벌IB데스크'를 설치하고 현지 IB 분야 먹거리를 발굴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께 지주사로 전환되면 다른 금융지주와 비슷한 은행·금투·기타 계열사 IB 조직을 통합한 별도 CIB 조직을 신설할 방침이다. 지난주 아주캐피탈 지분 인수에 나선 것처럼 별도 펀드를 만들어 우량 기업을 사들인 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팔아 차익을 올리는 투자도 확대할 예정이다.
KB금융그룹은 증권사가 주도해온 글로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을 필두로 KB생명보험과 KB자산운용이 총 8억달러 규모의 미국 펜실베이니아 790㎿ 가스복합화력발전소 '마커스훅 에너지센터' 인수금융을 주선한 바 있다.
금융그룹의 IB 조직 덩치 키우기 전략은 7월부터 시행되는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 방안'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자기자본이 4조원을 넘는 대형 증권사는 만기 1년 이하의 어음 발행과 8조원이 넘으면 일반 고객에게 은행 예금처럼 파는 종합투자계좌(IMA) 운용이 가능해진다. 이들 대형 증권사가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기업 신용공여 업무도 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결국 증권사도 은행과 똑같은 수신·여신 기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증권사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지금의 두 배로 늘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권사가 취약했던 부분이 바로 자금 조달이었는데 단기어음 업무 빗장이 풀리면서 걸림돌이 사라졌다"며 "자금력이 확보되면 우량 기업만 골라서 대출을 늘리는 등 유사은행업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대출 위주의 전통적인 은행 수익구조가 초대형 IB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 때문에 위태로워진 만큼 역으로 증권사 고유 업무로 인식돼 온 기업·인프라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인수금융, 기업 채권 발행과 기업공개(IPO) 주선 등 IB사업을 새로운 캐시카우로 키울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실제 IB 업무로 나오는 수수료 수입이 쏠쏠한 편이다.
우리은행이 지난 1분기 올린 당기순이익 6375억원 중 IB사업으로 거둔 이익은 650억원으로 10%를 넘어선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중심의 금융그룹과 대형 증권사가 수익을 위해 각자 고유 업무로 봤던 분야에 서로 뛰어들면서 업무 영역을 나누는 것이 점차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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