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가격 2000%나 뛰어 오르는 암표의 세계
입력 2017-06-20 17:09  | 수정 2017-06-20 18:34
에드 시런의 맨체스터 공연 현장. 사진 출처 에드 시런 공식 홈페이지

"에드 시런 양도합니다." "에드 시런 콘서트 수고비 받습니다."
20일 트위터에 에드 시런을 검색하면 이런 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온다. 지난 15일 오후 12시에 티켓 오픈한 영국 팝가수 에드 시런 내한공연 이 시작과 동시에 스탠딩 R석이 매진된 데 따른 것이다.좌석은 한정돼 있고 여기에 '단 한번의 기회'란 조건까지 붙으니 암표가 불티나게 팔린다.
이베이 자회사인 온라인 티켓마켓 스텁허브가 20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재구매 티켓, 즉 암표를 사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국내 소비자 20~40대 2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에 진행됐다.
EXO, 지드래곤, 콜드플레이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인기 공연에 암표는 숙명이다. 암표의 온라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플미'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플미'는 프리미엄 티켓의 준말로 웃돈을 얹어 원가보다 비싸게 파는 표를 말한다. 공연 당일날 이뤄지는 오프라인 암표는 판매자도 그날 팔지 못하면 손해이므로 프리미엄은 200% 정도 수준이 보통이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보다 정확히 파악되면서 희소한 티켓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 콘서트는 올림픽경기장 올림픽홀에서 약 4000석 규모로 이틀간 열리는데, 전석 7만7000원짜리 티켓이 현재 온라인상에서 최고 140만원에 팔리고 있다. 2000%에 가까운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암표 구매자들의 상당수가 포털 중고나라와 같은 웹사이트 혹은 SNS를 통해서 티켓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거래장소만 제공할 뿐 공식적으로 티켓 매매에 대한 개입이나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범죄의 온상이 됐다. 티켓 값을 받고 티켓을 보내지 않거나 가짜 티켓을 파는 사기가 판을 친다.
그럼에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있는 한 암표는 없어지기 힘들다. 공연계 관계자는 "티켓을 사놓고 가지 못해 사표가 되는 경우가 35%에 달하는데 이럴 때 암표는 사표 방지의 순기능 역할을 한다"며 "무작정 금지하는 것은 암표를 더욱 음성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세컨더리 마켓'이 해결책으로 눈길을 끄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암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베이 자회사인 온라인 티켓마켓 스텁허브는 팬보호 보장프로그램(Fan Protect Guarantee)을 도입했다. 회사가 직접 매매 과정에 개입해 돈을 보관하고 있다가 구매자가 표를 받으면 판매자에게 돈을 송금하는 시스템이다. 티켓 거래 전 과정을 고객센터에서 관리 및 확인하며 공연이 취소되거나 사용할 수 없는 티켓 거래에 대하여는 티켓 교환 또는 환불을 책임진다. 또 부당거래를 하는 사용자들을 바로 차단한다. 이런 세컨더리 마켓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티켓이 올라오고 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장점도 있다.
초고가 암표 기승에 팬들이 직접 '암표 금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팬들의 애정을 볼모로 티켓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과한 프리미엄이 붙은 티켓을 사지 말자고 독려하며 자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래한다. 뮤지컬 팬들이 모여 있는 'DC 인사이드 연극 뮤지컬 갤러리'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원가에 티켓 '양도'만 가능하며 프리미엄을 얹은 재판매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각종 '불법적인 행위'에는 법적 제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매크로를 이용한 대량티켓 구매다. 매크로란 컴퓨터로 하여금 반복 작업을 대신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매크로를 이용하면 티켓 구매 시 해야 하는 개인정보 입력 등을 사람 손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량 예매하거나 좋은 좌석을 선점한 이들은 바로 티켓을 중고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되판다. 수익이 짭짤하다보니 이를 업으로 하는 전문 암표상도 많다.
예매업체들은 매크로 방지를 위해 자동 예매 방지 문자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결국 매크로를 통한 예매를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매크로는 예매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덜어줄 뿐 불법 해킹 등과는 달라 처벌은 쉽지 않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매크로 사용을 처벌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온라인은 관련 법이 없어 사각지대"라며 "티켓 거래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매크로, 대리 티케팅 등 편법행위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이므로 관련법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티켓 재구매 및 매매는 불법이 아니지만 매크로만큼은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연방법률인 온라인티켓판매법(Better Online Ticket Sales Act of 2016)에서는 온라인에서 불법적인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켓 구매와 이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예술문화법'을 근거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 500달러 이상 1500달러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우리나라도 윤영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4월 매크로를 활용한 암표 판매에 최대 1000만원의 벌금을 매기는 공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유동수(더불어민주당), 신용현(국민의당) 등 많은 의원들이 매크로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현재 모두 계류 상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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