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온전히 그 인물이 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KBS2 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평범한 주부인 유설옥이 열혈형사 하완승과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었다. 유설옥 역할을 맡은 최강희(40)는 엉뚱한 아줌마로 출연해 추리극을 완성했다. 밝은 분위기 만큼이나 최강희에게 '추리의 여왕'은 긴 슬럼프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드라마였다.
"촬영장이 좋은 친구들이 모인 것처럼 편안했어요. 유난스럽진 않았지만, 배우들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좋았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감독님이 캐스팅 제의를 하시면서 '강희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좋은 분들과 함께해 '추리의 여왕'이 주머니에 넣고 놀 수 있는 장난감 같은 드라마가 된 듯합니다."
'추리의 여왕' 마지막회에서는 두 번째 시즌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사망한 유설옥의 부모는 뒤늦게 살인 누명을 벗었고, 하완승은 17년 전 행방불명된 여자친구 서현수(이시원 분)를 찾았다. 그러나 막바지에 등장한 김실장의 정체는 베일에 싸였고, 정지원(신현빈 분)은 그에게 '하완승의 비밀'을 넘기려고 했다.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시즌2에 기대를 나타냈다.
"두 번째 시즌 암시를 조금 준 게 아녜요(웃음). 배우들끼리 '열린 결말인가 아니면 수습이 안 돼서 줄거리를 이렇게 쓴 건가' 의견이 분분했죠. 배우들이 쫑파티 때 다음 시즌을 꼭 하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어요. 이른 시일 내에 시즌2가 기획돼서 함께 호흡을 맞췄으면 합니다."
최강희는 '추리의 여왕'에서의 연기와 관련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했다. 전작 MBC '화려한 유혹'까지 이어졌던 슬럼프를 좋은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 1995년 KBS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해 주목받았던 그가 성인이 돼 한계에 부딪혀 느꼈던 불안감을 떨치고 청소년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큰 꿈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우연히 배우가 돼서 연기가 무섭지 않았고, 천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죠. 성인 드라마를 할 때부터 제 연기를 보게 됐어요. 연기 기준치는 높은데 항상 미달처럼 느껴졌죠. 자책도 많이 했어요. '추리의 여왕'에서 즐겁게 촬영한 덕분에 청소년 드라마를 할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아줌마 연기는 최강희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데도 한몫했다. 40대에 들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귀여운 척할 수 있었다. 여자 배우들에게 쏟아지는 외모적인 평가나 기대치를 넘을 수 있었던 것도 발랄한 캐릭터에 자신을 맡겨 극의 흐름과 발맞췄기 때문이다.
"안티가 없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저를 보는 대중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게 됐죠. 반복적인 조합이나 캐릭터를 하면서 정체되는 느낌을 받았고요. 저를 표현하는 '동안'이라는 글자도 물리더라고요. '동안'이라는 글씨처럼 제가 생긴 거 같기도 했어요(웃음). '4차원'이라는 수식어도 이물감이 들었죠. 어느새 그 단어들에 맞춰서 살아갔고, 밖에 나가기 싫어서 숨고 싶기만 했어요."
최강희를 둘러싼 '동안' '4차원'이라는 무게를 덜어준 게 '추리의 여왕'이었다. 유설옥을 만나 주변의 기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최강희는 "'화려한 유혹'을 연기할 때는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50부작을 끌어가는 힘은 모자랐고, 20회차가 됐을 때는 연기학원에 등록할 정도였다.
"'추리의 여왕'은 제게 새로운 문이 돼준 것 같아요. 밭의 흙을 뒤집어서 고르게 하듯 다시 생명을 가진 흙이 됐죠. 아줌마 역할도 할 수 있고, 저와 비슷한 인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연기하는 후배들과 스터디도 하려고 해요. 답을 제시해 줄 수는 없지만, 환기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닫아놨던 마음의 빗장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인생과 연기의 짐을 짊어졌던 최강희는 이제 선후배에게 도움을 받았고, 필요한 곳에 손을 뻗을 준비도 했다. '추리의 여왕'에서 호흡을 맞춘 '연예계 잉꼬부부' 권상우(41)를 통해 부정적이던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저에 대한 부정적인 성향이 많이 회복됐어요. 과거에는 연예인들이 연애를 감춰서 건강해 보이지 않기도 했죠. 최근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결혼하는 분들이 많아요. (권)상우 씨와 연기하면서 결혼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죠. 결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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