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립군 곡수 役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배우 김무열(35)은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자신처럼 나오지 않아서 좋아했다. 나아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그는 "인간 김무열보다 배우 김무열로, 캐릭터로 관객을 만나는 게 좋다. 캐릭터로만 보이는 게 내 판타지"라며 "수염을 붙이고 나오는 게 특히 좋았다"고 즐거워했다.
"예전에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 선배들이 분장하고는 관객을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그게 관객에게 여운을 남겨준다고 생각했어요. 배우의 개인적인 것들보다 작품을 바라보고 인물을 생각하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이번 대립군의 곡수를 수염 때문에라도 못 알아본다고 하니 특히 좋았죠."
김무열은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얼음 공연을 하다가 대립군에 캐스팅됐다. 욕 잘하는 형사로 등장한 그를 보고 정윤철 감독은 "바르고 착한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욕을 잘한다"며 출연 제안을 했다. 김무열은 "조선 시대에도 돈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종의 용병이 있구나, 신기하다는 관심이 시작이었다"며 "시나리오를 봤는데 가진 것 없는 백성이 뭔가를 이루는 것에서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고, 결과적으로 해냈다는 것도 좋았다.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극적인 죽음 속에서 승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전작 최종병기 활에서는 활 한번 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원 없이 쐈다. 김무열은 "그 갈망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웃으며 "그 한을 이번에 풀었다. 그때 살을 비틀어 쏘는 걸 배웠는데 이번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혼자서 과녁도 만들어 연습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한국전통무예를 공부한 박사가 무기와 액션 신에 자문을 해주는 등 도움을 받기도 했다.
활을 쏴 봐서 좋다는 그가 최종병기 활에서 함께한 그리고 소속사 동료인 류승룡에게 자랑하진 않았을까. 김무열은 "류승룡 선배는 헬스장에서 다 벗고 만났다. 대립군 힘들었다고 하려고 했는데 형 등에 상처가 많더라. 염력을 하면서 다쳤는지 손톱자국이라고 해야 하나 긁힌 상처가 많더라. 고생담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쏙 들어가더라. 수많은 전장을 치른, 영화 용의자에서 나왔던 공유 형 같은 상처를 보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다.
김무열은 본인의 역할도 좋긴 했지만 "이정재, 여진구 역할도 탐이 났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남의 떡이 항상 커 보인다(웃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에 정재 형을 보며 놀랐다. 고민을 진짜 많이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더라. 대립군을 이끄는 토우를 연기하는 형을 보면서 내가 토우를 맡았으면 아마도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그는 결혼 전에도 가장이었다. 김무열이 20살 때 아버지가 머리를 다쳐 쓰러졌고,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다가 암이 발견돼 돌아가셨다. 당시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인해 가계 빚이 2억원이 넘었다. 생계가 힘들었어도 연기가 좋았다. "철없이 연기를 즐겼다"고 과거를 회상한 그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았는데도 이 일을 놓지 않은 건 즐겁고 재미있어서"라며 "그래도 경제적 도움을 줘야 하니 밤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낮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지금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제 삶은 전체적으로 치열함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나라 욕을 하는 등 곡수 역할이 시원하기도 했죠. 특히 성 앞에서 왕에게 나와보슈라며 대사를 이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는 4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였는데 여자 스태프 중 몇몇은 감정이 북받쳐 우는 분도 있었죠. 광화문 앞에서 소리치는 것 같은 감정을 갖고 연기했어요. 관객들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광화문에 있는 것처럼 뭐라도 소리칠 수 있었기에 좋았어요. 스태프라도 듣고 후련해하거나 서로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지 않았나 해요."
그러면서 본인에게 인상 깊게 남은 또 다른 한 장면도 언급했다. 김무열이 노래하고 여진구가 춤을 추며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는 장면이다. 비하인드가 있었다.
김무열은 "사실 감독님이 너무 어려운 노래를 촬영 전날 선택하시더라"며 "모텔방에서 진구와 둘이 밤을 새워 겨우 촬영할 정도로 만들어 갔다. 감독님한테 따졌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노래가 서툴렀는데도 현장에 가니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더라. 준비한 감정이 아니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개탄스러운 나라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묻어난 듯하다.
jeigu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배우 김무열(35)은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자신처럼 나오지 않아서 좋아했다. 나아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그는 "인간 김무열보다 배우 김무열로, 캐릭터로 관객을 만나는 게 좋다. 캐릭터로만 보이는 게 내 판타지"라며 "수염을 붙이고 나오는 게 특히 좋았다"고 즐거워했다.
"예전에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 선배들이 분장하고는 관객을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그게 관객에게 여운을 남겨준다고 생각했어요. 배우의 개인적인 것들보다 작품을 바라보고 인물을 생각하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이번 대립군의 곡수를 수염 때문에라도 못 알아본다고 하니 특히 좋았죠."
김무열은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얼음 공연을 하다가 대립군에 캐스팅됐다. 욕 잘하는 형사로 등장한 그를 보고 정윤철 감독은 "바르고 착한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욕을 잘한다"며 출연 제안을 했다. 김무열은 "조선 시대에도 돈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종의 용병이 있구나, 신기하다는 관심이 시작이었다"며 "시나리오를 봤는데 가진 것 없는 백성이 뭔가를 이루는 것에서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고, 결과적으로 해냈다는 것도 좋았다.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극적인 죽음 속에서 승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대립군` 곡수 역의 배우 김무열.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활쏘기의 명수 곡수는 노망난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먹고 살기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해 전쟁을 치르는 인물로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대립군에서 대립군 중 한 명이다. 대립군은 못 먹고 못 자고 못 입는 백성이다. 그는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다이어트를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며 "기름기가 있으면 안 되는 대립군이기에 못 먹어야 했다. 그래도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는 밥을 먹어도 바로 꺼졌다. 밥을 잘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떠올렸다.전작 최종병기 활에서는 활 한번 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원 없이 쐈다. 김무열은 "그 갈망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웃으며 "그 한을 이번에 풀었다. 그때 살을 비틀어 쏘는 걸 배웠는데 이번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혼자서 과녁도 만들어 연습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한국전통무예를 공부한 박사가 무기와 액션 신에 자문을 해주는 등 도움을 받기도 했다.
활을 쏴 봐서 좋다는 그가 최종병기 활에서 함께한 그리고 소속사 동료인 류승룡에게 자랑하진 않았을까. 김무열은 "류승룡 선배는 헬스장에서 다 벗고 만났다. 대립군 힘들었다고 하려고 했는데 형 등에 상처가 많더라. 염력을 하면서 다쳤는지 손톱자국이라고 해야 하나 긁힌 상처가 많더라. 고생담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쏙 들어가더라. 수많은 전장을 치른, 영화 용의자에서 나왔던 공유 형 같은 상처를 보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다.
김무열은 본인의 역할도 좋긴 했지만 "이정재, 여진구 역할도 탐이 났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남의 떡이 항상 커 보인다(웃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에 정재 형을 보며 놀랐다. 고민을 진짜 많이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더라. 대립군을 이끄는 토우를 연기하는 형을 보면서 내가 토우를 맡았으면 아마도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대립군` 곡수 역의 배우 김무열. 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대립군은 배우 윤승아와 결혼한 뒤 공개된 첫 작품이 됐다. 머니백을 먼저 찍었으나 아직 개봉 전이다. 김무열은 결혼에 대해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아직 애가 없어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을 자주 가는 데 매번 소풍을 가는 것 같다. 여러 가지를 하는 일상"이라며 "예술이라는 것도 삶이 먼저고 그래야 예술을 할 수 있지 않나. 내 삶이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건 좋은 것 같다"고 짚었다.사실 그는 결혼 전에도 가장이었다. 김무열이 20살 때 아버지가 머리를 다쳐 쓰러졌고,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다가 암이 발견돼 돌아가셨다. 당시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인해 가계 빚이 2억원이 넘었다. 생계가 힘들었어도 연기가 좋았다. "철없이 연기를 즐겼다"고 과거를 회상한 그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았는데도 이 일을 놓지 않은 건 즐겁고 재미있어서"라며 "그래도 경제적 도움을 줘야 하니 밤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낮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지금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제 삶은 전체적으로 치열함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나라 욕을 하는 등 곡수 역할이 시원하기도 했죠. 특히 성 앞에서 왕에게 나와보슈라며 대사를 이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는 4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였는데 여자 스태프 중 몇몇은 감정이 북받쳐 우는 분도 있었죠. 광화문 앞에서 소리치는 것 같은 감정을 갖고 연기했어요. 관객들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광화문에 있는 것처럼 뭐라도 소리칠 수 있었기에 좋았어요. 스태프라도 듣고 후련해하거나 서로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지 않았나 해요."
그러면서 본인에게 인상 깊게 남은 또 다른 한 장면도 언급했다. 김무열이 노래하고 여진구가 춤을 추며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는 장면이다. 비하인드가 있었다.
김무열은 "사실 감독님이 너무 어려운 노래를 촬영 전날 선택하시더라"며 "모텔방에서 진구와 둘이 밤을 새워 겨우 촬영할 정도로 만들어 갔다. 감독님한테 따졌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노래가 서툴렀는데도 현장에 가니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더라. 준비한 감정이 아니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개탄스러운 나라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묻어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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