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하는방식 개혁을 단행하는 해다. 올해도 꼭 지난해 수준의 임금인상, 4년 연속 임금인상을 해주길 바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합리한 대우는 인정할 수 없다. 강제력을 갖도록 법률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다."
올해 1월 초 게이단렌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등 경제 3단체의 신년축하파티장에서 나온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이다. 근로자들의 월급을 꼭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만큼 대우하라는 내용만 놓고 보면 재계가 바짝 긴장할 요구사항들이었지만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임금인상을 부탁한다는 언급을 할 때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부담스러운 주제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장면은 아베 정권과 재계 사이에 상당한 신뢰 관계가 쌓여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말 아베 2차 정권이 수립된 이후 추진된 아베노믹스를 보면 친(親)기업 정책이 수두룩하다.
일본은행(BOJ)의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정책은 도요타를 필두로 한 수출기업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BOJ는 디플레 탈출이 목표라고 얘기하지만 옛 민주당 정권 시절 달러당 75엔대의 초엔고에 시달렸던 수출기업들에게 120~130엔까지 떨어진 엔화값은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에도 상장기업 순이익은 20조엔을 넘어 사상 최대가 될 전망이다. 세계 최고수준에 달했던 일본의 법인세율은 불과 3년 만에 7%포인트 낮아져 20%대에 진입했다.
무엇보다 재계의 신뢰를 받는 것은 전방위적인 규제완화다. 아베 총리가 재계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미래투자회의와 전략특구회의는 규제완화가 핵심 과제다.
농업의 기업 참여, 원격진료 등 의료개혁, 카지노 허용, 도쿄 수도권과 오사카 등 대도시권역의 전략특구 지정 등 과거 정권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규제를 하나 둘씩 각개격파에 나서고 있다. '암반규제'라는 용어가 있을 만큼 공무원 규제왕국이었던 일본병을 깨겠다는 의지를 정권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정권이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신뢰감을 던져주고 있다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온다.
성장전략에 근거한 친기업정책은 급진적으로 여겨질 법한 일자리 정책을 펴면서 기업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고 있다. 실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의 경우 기본금 상여금 수당 복지후생에 이르기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격차를 없애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매년 봄에 진행되는 관제춘투에서는 노조보다 정부가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정책이 무리없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물론 재계에 해줄 것은 해주고 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언뜻 보면 유럽식 사회주의 좌파정책으로 여겨질 만한 정책들이 좌파니, 우파니 하는 진영논리로 논의되지 않고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일자리 논쟁이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산인구감소와 경기회복 속에 구인난과 일자리 미스매칭 속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은 일하는 방식 개혁과 함께 '1억(명)총활약사회'라는 두 가지 기치를 내걸고 일자리 개혁 정책을 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여성인력과 고령자 활용 등 일자리를 둘러싼 종합적인 분석을 해가며 정책믹스를 해나가고 있다. 재계가 반발하는 임금인상이나 비정규직 처우개선도 소비 진작을 통한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확실한 정책타깃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며 설득해가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보다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10%대였던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가깝게 높아진 상황에서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인 안정도 이런 드라이브에 크게 기여했다. 정치적으론 아베 1강이 지속되면서 재계 노동계의 소통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난제를 쉽게 풀어나가고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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