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군 사용 화포 불랑기 실전 배치 장소서 최초 확인
입력 2017-04-25 10:20  | 수정 2017-04-25 10:39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건평돈대 무너진 포좌에서 출토된 불랑기. 실전 배치 장소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30여 년 전 조선군이 국토 수호에 사용하던 화포 '불랑기'가 실전 배치 장소에서 최초로 확인됐다.
25일 인천시는 인천시립박물관이 발굴 중인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건평돈대(시기념물 제38호)에서 불랑기 모포 1문을 출토했다고 밝혔다.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과 움직임을 탐지하고 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쌓은 조선후기 대표적 군사 시설이다. 1679년(숙종5년)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를 쌓았고, 이후 6개를 추가로 건설해 54개가 강화도 해안을 둘러싸고 있다. 당시 건설된 돈대 가운데 하나인 건평돈대는 2~4개의 포좌를 설치하고 불랑기를 배치한 것으로 기록되는데 이번에 그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불랑기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일종으로 포문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 화포다.

포신인 모포(母砲)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는데,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 한 뒤 불씨를 점화해 발사한다. 보통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세트를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사가 가능한 것이 불랑기의 특징이다. 지금까지 불랑기는 모포와 자포를 포함해 약 12문 가량이 확인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대부분 출토지가 분명치 않다.
이번에 출토된 불랑기엔 포신 하단에 자세한 명문(康熙十九年 二月 日 統制使全等江都墩(皇)上佛狼機百十五重百斤 監鑄軍官 折衝 申淸 前推管 崔以厚 前萬戶 姜俊 匠人 千守仁)이 새겨져 있어 시기와 제조자가 분명하게 파악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1680년(숙종 6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흘등이 강도돈대에서 사용할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는 100근이다. 감주군관 절충장군 신청, 전 추관 최이후 전 만호 강준, 장인 천수인'의 내용을 적어 불랑기 제작기관, 관련 감독 관리, 장인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불랑기의 명문 가운데 가장 상세한 기록이다.
특히 건평돈대 불랑기 모포는 보물 861호로 지정된 불랑기 자포(1563년 제작)에 비해 시기는 늦으나 화포의 실전 사용처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건평돈대 출토 불랑기는 조선시대 무기사 연구는 물론, 조선후기 도성과 강화 방비체계연구에서 보기 드문 실물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면서 "현재 인천시에서 추진 중인 강화 돈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과 관련해 유적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는 출토 불랑기를 26일 오후 2시 건평돈대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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