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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인터뷰] "밀어치기부터 다시" 황재균의 다짐
입력 2017-04-22 09:01  | 수정 2017-04-22 09:20
황재균은 최근 무너진 밸런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매경닷컴 MK스포츠(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지금 이 밸런스로 이렇게 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난 21일(한국시간) 새크라멘토 리버캣츠 홈구장 랠리필드에서 만난 황재균(29)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지금처럼 하면 (메이저리그 승격은) 없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황재균은 트리플A 새크라멘토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21일 경기까지 성적은 13경기 타율 0.264(53타수 14안타) 출루율 0.304 장타율 0.358.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 볼 정도의 놀라운 성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결과는 만들어 온 그다.
그러나 황재균은 "말도 안되는 타격을 했다"며 시즌 초반 자신의 모습에 대해 평가했다. "말도 안되고 너무 답답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거 큰일났다' 이러고 있었는데 그래도 지금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게 더 신기하다"며 부족한 것이 많은 성적이라고 말했다.
성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답답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황재균은 지금까지 4개의 장타를 기록했지만, 홈런은 한 개도 없었다. 스프링캠프 기간 팀 내 홈런 1위를 다퉜던 것을 생각하면 그답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3년간 황재균의 타격 모습을 지켜봐왔고, 지금도 황재균과 꾸준히 타격 자세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그의 에이전트 이한길 GSI 대표는 "좋은 결과가 나올 때와 나쁜 결과가 나올 때 레그킥 타이밍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선수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머리로는 타이밍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지만 몸이 늦게 반응한다는 것.
그나마 최근 팀이 홈연전을 치르면서 예전 타이밍을 되찾아가고 있는중이다. 황재균은 "타격코치가 지금 스윙 타이밍이나 이런 것들은 스프링캠프 시절로 돌아오고 있으니 멘탈만 바로잡으면 될 거 같다고 말했다"며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호쾌한 타격으로 가능성을 보였던 황재균은 왜 지금 헤매고 있는 것일까? 황재균은 달라진 환경, 그리고 조급함을 원인으로 꼽았다.


말로만 들었던 '눈물젖은 빵'
"천지차이라고 보면 된다."
황재균은 마이너리그 환경을 묻는 질문에 이 한 문장으로 답했다. 평소 생활하는 클럽하우스부터 원정 이동까지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는 모든 것이 다르다. 코치 숫자도 많지 않아 제대로된 훈련을 하기 어렵고, 트레이너도 한 명밖에 없어 선수들을 모두 관리하기가 쉽지않다. 괜히 '눈물젖은 빵'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다. 마이너리그 생활이 어떻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다. 충분히 각오도 하고 넘어왔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얘기도 많이 듣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오니까 살짝 '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 메이저리그 캠프에 있을 때는 집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여기 처음 왔을 때는 허허벌판을 보며 '이거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 집중이 안됐다. 라커에 멍하니 앉아 '여기서 뭐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원정 이동은 특히 그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첫 원정 가서 루틴이 완전히 무너졌다"며 첫 원정 시리즈였던 솔트 레이크 원정에서 리듬이 무너져 잠도 제대로 못잤다고 털어놨다. 전날 저녁 경기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서 집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첫 비행기를 타는 일정은 고역이다.
"일반 승객들이 비행기 타는 과정하고 똑같다. 보안 검색도 다 받는다. 좌석도 일반석이다. 여기에는 좌석이 지정돼있지 않고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는 항공사도 있더라. 그런 걸 이용하고 있다."
핸드폰을 열면 메이저리그 소식이 쏟아져나오고, 클럽하우스 TV에서는 자이언츠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달라진 환경을 경험하는 것은 아무리 정신력이 튼튼한 그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환경 변화가 제일 큰 거 같다"며 시즌 초반 달라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한국시간)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황재균의 모습. 사진(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벗어나고픈 마음에 생긴 조급함
달라진 환경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이를 탓할수만은 없는 일이다. 팀 동료 모두 같은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고, 지금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선수들도 이와 같은(혹은 더 나쁜) 환경을 이겨낸 이들이다.
"마음가짐의 문제인 거 같다." 그는 자신을 더 힘들게 한 것은 환경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였다고 반성했다. "처음에는 빨리 올라가려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낸 거 같다.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해졌고, 조급했다. 홈런을 쳐야만 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힘이 들어갔다."
자신과의 싸움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상대 투수와의 싸움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는 "한국에 오는 외국인 투수들이 여기 투수들보다 공이 더 좋다. 그러다 보니 타석에서도 힘이 들어갔다.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홈런을 쳐야지 이런 생각만 갖고 있었다"며 상대 투수들을 지나치게 가볍게 본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무조건 잘쳐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던 그는, 최근 다시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밀어치기부터 다시 하고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조급함을 버리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격에서나 수비에서나 집중하는 것에 제일 신경쓰고 있다"며 다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좌익수 수비에 대한 미련도 내려놨다. "시범경기 때처럼 잘 쳐야 외야 수비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낯선 포지션보다는 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비 에반스 단장도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재균의 콜업은 "좌익수 수비가 아니라 타격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단장이 한 말을 기사를 통해 접해 알고 있었다. 이 말속에 숨겨진 의미도 너무나도 잘알고 있었다. "내려와서 너무 못치고 있는 게 문제다. 내 잘못이니까 뭐라 할 것은 없다. 성적을 내야 콜업이 되든 말든 할 것이다. 잘쳐야 한다. 무조건 잘쳐야 한다. 여기서 잘쳐야 올라가던지 할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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