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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무비골라주]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조선의 아픔을 품에 안고 산 여인
입력 2017-04-20 14:01 
서서평, 선교사·간호사 보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던 여인
영화는 보고 싶은데 입맛에 딱 맞는작품이 없다고요? 보고 싶은 영화에 마땅한 정보가 없다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상업 영화 외에도 최신 개봉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골라주는 코너로, 예비관객들의 영화를 향한 호기심을 살살 긁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MBN스타 김솔지 기자]

제목 :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감독 : 홍주연

출연 : 하정우(내레이션), 윤안나, 안은새

등급 : 전체 관람가

상영시간 : 78분

개봉 : 4월 26일



#. 천천히 평온하게

조선의 테레사로 불린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의 아름다운 일생을 통해 진정한 섬김과 헌신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배우 하정우가 ‘서서평을 통해 첫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그는 내레이션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로 작품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하정우는 서서평 선교사의 이야기를 부드럽고 진실된 목소리로 전한다.

#. 서서평, 그는 누구인가

1880년 태어나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선교사 교육을 받고 1912년 3월 조선에 파견된 서서평은 일제의 수탈이 특히 극심했던 호남 지역 일대의 나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본격적인 간호 활동을 시작했다.

1920년에는 자신이 사는 집을 소녀들을 위한 학교로 바꿔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큰 인기를 끌면서 1922년에는 학생 수가 많아져 오웬기념각으로 수업 장소를 옮겨야 했을 정도였다. 1923년에는 조선간호부회를 만들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국제간호사협의회 등록이 좌절돼 1929년 직접 미국을 방문해 국제간호협의회에 참석해 현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을 탄생시켰다.


또한 그녀는 조선의 여성들은 남편의 노예입니다. 이 세상에서 조선의 여성보다 인내심 많고 할 일 많은 여성들은 없습니다”라며 일제강점 당시 조선의 여성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활동들에 지대한 애정을 드러내 1926년에는 조선 최초의 여자 신학교이자 현 전주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인 이일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이일학교의 학생 수는 265명에 이를 만큼 서서평은 지역 여성들의 교육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부인조력회, 여전도회연합회 등을 창설했으며 제주시 북쪽에 자리한 추자도 일대에까지 관심을 가졌던 서서평의 활약은 미국 본토에까지 전해지며 미국 장로교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선교사 7인에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

조선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호남 지역에 4,000그루의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을 키워냈으며, 스스로 고아를 14명이나 입양해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은 물론, 결혼을 성사시키는 등 호남 지역에서 ‘어머니로 통했다. 그녀의 사후 광주 최초로 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된 장례식에는 나병 환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장례 행렬을 뒤따르며 어머니”를 외치며 오열했다.

영화 스틸컷 배우 윤안나 / 실존인물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 천천히 평온하게

서서평은 그 어느 선교사들 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가까이서 지내길 원했다. 인종도 문화도 다른 푸른 눈의 여인이 조선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며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자 애썼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살아가려 했다.

그가 결코 사랑이 풍부해서 나누고자 했던 게 아니다. 그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나고 서서평은 할머니 품에서 자라야 했다. 할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서서평은 가톨릭 교구 학교에서 공부했다. 할머니마저 사망한 후 고아가 된 아홉 살의 서서평은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미국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데 성공하고 뉴욕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학교에 들어갔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탓인지 불쌍한 이웃을 돕는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낮엔 간호사로, 밤에는 선교사로 봉사활동을 했다. 이때 서서평은 기독교로 개종하며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와 충돌이 있었고 결국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서서평은 당시 선교사 생활비로 받았던 3원 중 자신을 위해 쓴 돈이 겨우 10전밖에 안 된다.나머지는 모두 불우한 조선인을 위해 사용했다.

그가 죽고 난 뒤 남아 있었던 것은 침상에 절반짜리 담요와 지갑 속에 7전이 있었고 부엌에는 그가 먹던 강냉이 가루 2홉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은행잔고는 0원이었다.

#.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당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는 시체를 해부해 연구자료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원인을 규명해 다시는 자기와 같은 환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신을 기증한 것이다.

백춘성 장로는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서평의 삶을 다룬 책 ‘천국에서 만납시다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솔지 기자 solji@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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